다시 오는 봄
다시 오는 봄
  • 문틈 시인
  • 승인 2018.03.1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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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날씨가 참 맑다. 요 근래 보기 드문 날이다. 읽던 책을 덮고 바깥 산책을 나섰다. 이런 날이 또 언제 있을까 싶어서다. 하늘은 푸른 융단처럼 깔려있고 그 위로 솜털 같은 구름 뭉치들이 한가롭게 떠다니고 있다. 바람결은 한결 부드럽고 햇볕은 맞춤하니 따스하다.

천변의 산책로를 따라 무심히 걷노라니 개울물소리가 졸졸졸 귀에 젖어든다. 엊그제만 해도 살얼음으로 희게 얼어 있던 개울물이 다시 흐르다니. 산골짜기에 얼어붙어 있던 얼음이 먼 바다가 부르는 소리에 깨어나 흘러가는 물결소리다.

겨우내 벗은 몸으로 추위를 견뎠던 나무들은 아직 그대로다. 하지만 어느 가지에는 연두빛 그늘이 비껴 있는 듯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내 직감으로는 겨울과 봄의 경계 날이 있다면 오늘이 그날인 듯하다. 그렇다면 내일쯤이면 실가지들에 연두빛이 이내처럼 어른거릴 것이라는 짐작이다.

나는 개울물을 움켜보려 개울 징검다리 돌에 엉거주춤 앉아 흐르는 개울물을 손으로 만져본다. 찬 기운과 부드러움이 손바닥을 간질인다. 한참을 물속에 손을 넣고 쥐락펴락하며 물결을 느낀다. 손가락을 타고 몸으로 퍼져 올라오는 이 신호는 틀림없이 이 빛고을에 봄이 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온몸의 세포가 들고 일어서는 듯한 느낌이다.

눈길을 돌리니 나만 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나무들, 산들, 풀뿌리들, 그리고 산새들까지도 봄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 눈에 보인다. 하늘과 땅과 그 사이의 모든 물상들이 지금 생명을 소생시킬 마법사 같은 봄을 설레며 기다리고 있다.

한참 걷고 있노라니 어떤 한 사내가 천변에 늘어서 있는 나무들의 지지대를 풀고 있다. 물으니 나무들이 대지에 뿌리를 박아 이제 지지대가 필요 없다고 한다. 나무마다 서너 개의 작대기 같은 지지목이 버티고 있었는데 그것을 하나하나 푸는 모습이 봄이 오는 길목에서 퍽 인상적으로 보인다. 결국 모든 것은 저 나무들처럼 언젠가는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계속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 걷는 내내 몸과 마음이 봄을 기다리는 저 나무들, 새들, 개울물과도 같은 자연물에 합일되는 듯한 감정으로 고양되는 것 같다. 아니, 자신은 어느 다른 지경으로 사라지고 한가로이 걷는 사내는 그 사내의 그림자 같다. 그 순간 이 생명이 대자연에 안기는 행복감 같은 것으로 전율한다.

오늘 이 느낌을 잊지 못할 것이다. 처음으로 계절의 두 팔에 어린아이처럼 안겨 있는 듯한 안도감, 행복감. 아마도 지금 봄을 기다리는 모든 생명들도 이런 느낌일 것이다. 이 한 생명을 건사하려고 하늘과 땅은 온 힘을 다해 보살핀다는 것을 실감한다. 마치 요람에 나를 뉘어 개울의 잔물결 소리를 따라 봄길로 띄워 보내는 것만 같다.

확실히 책보다 자연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나무의 표피를 찢고 나올 새 움, 연약한 푸른 잎들이 지표를 뚫고 내밀 풀뿌리들, 마른 나무의 잔가지들에 뾰족뾰족 솟아날 꽃망울들, 봄이 와서 벌릴 찬란한 마법을 상상만 해도 환상적이다. 그런 기적 같은 장면을 곧 보게 될 것이다. 이 아니 기쁘지 않을 손가.

지금 이 순간 마음은 티 하나 없이 맑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과거의 상처를 헤집거나 현실을 괴로워하거나 그런 아무런 어룽진 것들이 당최 없다. 선한 마음자리에 티 하나 없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뭐랄까, 거듭난 기분. 고승이라면 이 장면에서 한 소식을 들었으련만 미욱한 중생이라 표현할 말을 얻지 못한다. 언어 넘어 있는 이 경계에 무슨 인간의 말을 보태랴.

옛 사람들은 봄이 와서 작업하는 것을 보고 죽은 생명이 부활한다고 믿었다. 부활사상이 생겨난 건 봄을 맞이하고서가 아닐까. 죽은 나무에 꽃을 피우는 기적을 목격하고서 그런 깨달음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봄이 오는 길은 부활을 시연하는 성로(聖路)인지도 모른다. 자연은 우리가 알지 못할 진리를 품고 있는 것만 같다. 다시 살아나는 불멸의 꿈을 인간에게 품게 한 것은 봄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 인간이 잠시 왔다 곧 간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합당하지 않다. 봄이 와서 만물을 안아주면 죽은 것들이 되살아난다. 그처럼 인간도 필경 다시 살려내는 봄에 안겨 언젠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종교적인 신앙에서가 아니라 자연에서 그런 철리(哲理)를 넘겨본다.  

산책길의 끝은 수백 년 된 은행나무가 서 있는 곳이다. 이 고목에도 내일 모레면 봄이 푸른 눈을 뜨게 할 것이다. 고목에 새싹이 튼다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부활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라 할 것인가.

사람마다의 마음에 아름답고 선한 이 봄이 개울물 소리 같은 ‘소식’을 전해주기를 소망한다. 봄이여, 부활이여, 그대 앞에 무릎 꿇고 경의를 표하는 이 마음으로 오라. 이 봄에 나는 늙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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