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5) 감물(感物)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5) 감물(感物)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3.08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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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른 산만은 예나 지금이나 꼭 같이 있다네

모든 사물을 순간적으로 보거나 자세히 보면 느낌이 있게 마련이다. 불현듯 떠오른 착상도 있고, 전후좌우를 생각하다가 떠오른 착상도 있다. 이를 붓을 들어 써놓으면 글이 되고 감상적인 자기 생각을 감물(感物)의 입장에서 곁들여 놓으면 문학작품이 된다. 요즈음은 시적 대상이 복잡해졌지만 우리 선현들에겐 단순한 자연이 시심의 대상이 되었다. 손수 심은 소나무와 대나무를 보고 안개와 노을은 변하는데 청산은 변함이 없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感物(감물) / 회재 이언적

자연 속에 집을 짓고 세월은 깊었는데

손수 심은 송죽이 온통 숲이 되었구나

노을의 모습 변해도 푸른 산은 변함없네.

卜築雲泉歲月深 手栽松竹摠成林

복축운천세월심 수재송죽총성림

烟霞朝慕多新態 唯有靑山無古今

연하조모다신태 유유청산무고금

저 푸른 산만은 예나 지금이나 꼭 같이 있다네(感物)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자연 속에 집을 짓고 세월만 깊이 숨어든데 / 손수 심은 소나무와 대가 온통 숲이 되었구려 // 아침 저녁에 안개와 노을의 모습은 변한다 하여도 / 저 푸른 산만은 예나 지금이나 꼭 같이 있다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사물을 보고 느낌이 있어]로 번역된다. 다음은 모 시인이 회재의 덕과 학문을 기리는 찬시조 한 수가 있어 눈길을 끈다. [자옥산(紫玉山) 시내 따라 철학 구름 따서 물고 / 서계십조(書啓十條) 죽장 삼아 새 조문 밝히시며 / 여명을 열어 제치라, 푸른 꿈도 따서 물라] 그는 향리인 경주 자옥산에 은거하며 학문에만 열중했다.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한 시인을 만나는 듯하다. 자연 속에 집을 짓고 세월만 깊이 숨어든데, 손수 심은 소나무와 대가 온통 숲이 되었다고 했다. 시인의 순수 자연시의 전형(典型)을 보이고 있는 듯하다. 자연에 집을 짓고 오랜 세월동안 그곳에 살았는데 손수 심은 소나무와 대나무가 온통 숲을 이루었다고 회고면서 송죽의 곧은 절개로 시상을 떠올리고 있다.

화자가 바라보는 송죽은 이처럼 선현들의 곧은 절개를 빗대어 나타내곤 했음 암시한다. 안개와 노을은 자주 변하지만 우뚝한 저 푸른 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같다는 자연에 기초한다는 한 예를 보이고 있다. 화자 자신의 곧은 절개는 물론 비록 유배는 가지만 두 마음을 품지 않겠다는 그 함성까지도 만난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자연 속 집 숨은 세월 송죽 온통 숲이네, 안개 노을 변한데도 고금 산은 변함없네’ 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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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1권 3부 外 참조]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귀향하여 자옥산에 독락당을 짓고 학문에 열중하다가 1537년 김안로가 죽자 다시 관직에 나아가 홍문관 부교리·응교를 거쳐 이듬해에는 직제학에 임명되었다가 전주부윤이 되었다.

【한자와 어구】

卜築: 집을 짓다. 雲泉: 구름과 샘. 곧 자연. 歲月深: 세월이 깊다. 手栽: 손수 심다. 松竹: 소나무와 대나무. 摠成林: 온통 숲이 되다. // 烟霞: 안개와 노을. 朝慕: 아침과 저녁. 多新態: 자주 새롭다. 有靑山無古今: 청산은 예나 이제나 같다(有: 있다. 靑山: 청산. 無古今: 예와 이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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