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4) 소회(所懷)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4) 소회(所懷)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3.01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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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햇빛이 하토(下土)에 임하였으니

급진개혁은 화를 입는 원동력이 된다. 급하면 탈이 난다는 진리도 알아둘 일이다. 개혁은 물이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지 그렇지 않으면 보수와 전통의 반발이라는 폭풍우를 동반한다. 그 과정에게 반대 세력에 부딪치면 큰 화에 직면한다.

이런 교훈적인 가르침을 한 정치가를 만나게 되는데, 조선초기가 지나 안정기에 접어든 시기에 선혈이 낭자하는 한 단면을 본다. 임금과 나라를 위해 몸부림쳤지만 이상(理想)으로 끝나는 한시 한 편을 번안해 본다.

所懷(소회) / 정암 조광조

임금사랑 나라 사랑 그 소원 하나로만

급진개혁 남이 몰라 하토에 임해 가니

밝음에 일편단심에 소소하게 비추네.

愛君如愛父      憂國若憂家

애군여애부      우국약우가

天日臨下土      昭昭照丹衷

천일임하토      소소조단충

하늘의 햇빛이 하토에 임하였으니(所懷)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1482∼1519)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이 하였고 / 나라 걱정하기를 내 집 걱정하듯 하였었네 // (이제) 하늘의 햇빛이 하토(下土)에 임하였으니 / 밝고 밝게만 (내) 일편단심(一片丹心)을 비추고 있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마음속에 담은 바의 회포]로 번역된다. 마지막 숨을 멈추면서도 인군(人君)과 나라 걱정을 하는 선비가 많았다. 사약을 받는 그 순간까지에도 임금을 원망하거나 반대세력을 책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극한 충성이자 오직 일편단심 그것뿐이었다. 이것이 조선의 선비 정신이었다. 배신을 받고 나면 이른바 폭로전으로 치닫는 지금의 상황과는 달랐다.

시인은 바로 그런 인물이었다. 중종이 바른 길로 가도록 갖은 정성을 다했건만 한문학(漢文學)을 무시할 수 없다고 나선 남곤(南袞)을 중심으로 한 사장파에 의해 결국은 희생양이 된다. 그러나 그 기개만큼은 얼마나 크고 넓은가. 임금과 나라 걱정을 사사로운 가정생활과 동격으로 생각하면서 하늘의 햇빛이 이제 다 하여 목숨에 비추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겼다.

화자는 곧 밝기도 밝게 일편단심을 소소하게 비추고 있다고 인생무상을 되돌아본다. 하늘의 햇빛이 하토에 임하였으니, 밝고 밝게만 자기의 일편단심을 비추고 있다고 했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일편단심만큼은 후대의 역사적 평가에 맡기려는 올곧은 선비의 기개를 보게 된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임금 사랑 부모 사랑 나라 걱정 내집 걱정, 하늘 하토 임했으니 밝게 비친 일편단심’ 이라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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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2권 3부 外 참조]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성균관 유생들을 중심으로 한 사림파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도학정치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그것은 국왕 교육, 성리학 이념 전파, 향촌 질서 개편, 사림파 등용, 훈구정치 개혁이었다.

【한자와 어구】

愛君: 임금을 사랑하다, 如: ~같이 하다. 愛父: 아버지를 사랑하다. 憂國: 나라를 걱정하다. 若: ~같이 하다. 憂家: 집안을 걱정하다. // 天日: 하늘의 햇빛, 환한 빛. 臨: 임하다. 下土: 지하, 곧 죽음을 말함. 昭昭: 환하게, 밝게. 照: 비추다. 丹衷: 일편단심, 작가의 일편단심의 지조를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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