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1) 미전인(未傳人)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1) 미전인(未傳人)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8.02.0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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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로만 여길 뿐 사람에겐 전할 수 없네

조선의 역사가 명(明)에 순종했던 구걸하는 역사였다면, 고려의 역사는 송(宋)에 맞서 대항하며 어깨를 쳐들고 으스대며 꼿꼿했던 역사였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그럼에도 기록과 문헌이 많지 않아 역사가 잘못 전해진다. 시조의 처음이 우탁이라고 하지만, 그 보다 280여년이 앞선 해동공자로 일컬어지고 있는 최충의 시조 2수가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14세기가 아닌 11세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을 상기하며 최충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未傳人(미전인) / 성재 최충

달빛은 촛불이요 산 빛은 손님인데

소나무에 현이 있어 악보 없이 연주하니

나 혼자 보배 여길 뿐 전할 수가 없다네.

滿庭月色無烟燭      入座山光不速賓

만정월색무연촉      입좌산광불속빈

更有松絃彈譜外      只堪珍重未傳人

갱유송현탄보외      지감진중미전인

보배로만 여길 뿐 사람에겐 전할 수 없네(未傳人)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성재(惺齋) 최충(崔沖:984~1068)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뜰에 가득하게 찬 달빛은 연기 없는 촛불이요 / 자리에 드는 산빛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라네 // 다시 소나무 현이 있어 악보 밖의 곡을 연주하느니 / 다만 보배로이 여길 뿐 사람에게는 전할 수는 없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사람에겐 전할 수 없네]로 번역된다. 고려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최 충이란 이름은 그리 생소하지 않다. 최승로가 유교적 정치개혁에 공헌한 인물이라면, 최충은 유교 교육을 제대로 받은 인물을 배출하는 데 이바지한 인물이라 평가된다. 실제 유교경전에 바탕을 둔 그의 학문은 유학이 꽃피울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데 공헌했다. 사학교육의 아버지다.

최충의 문장은 시구 몇 절과 약간의 금석문자가 전해질 뿐이다. 이유는 무인의 난으로 문신이 살해되고, 그들의 문집도 불태워질 때 함께 없어진 탓이라 한다.

시인은 뜰에 가득하게 찬 달빛은 연기 없는 촛불이요 자리에 드는 산빛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라고 했다.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원주 거돈사의 비문(碑文)과 직산 홍경사의 갈기(碣記)뿐이라 한다.

화자는 자연을 기묘하게 표현하는 재주와 시심을 부린다. 달빛은 연기 없는 촛불이요, 산 빛은 초대하지 않는 손님이라고 표현하면서, 소나무 ‘현’이 악보를 연주하고 있다고 표현한다. 이와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이 주는 메시지를 어찌 사람에게만 다 전달할 수 있겠는가라고 묻는데서 묘미를 찾는다.

위 감상적 평설의 요지는 ‘달빛 가득 촛불인데 초대 않는 산 빛 손님, 소나무 현이 악보 외 곡 연주하니 전치 못한 보배일뿐’ 이라는 상상력이다.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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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1권 1부 外 참조] 성재(惺齋) 최충(崔沖:984∼1068)으로 고려 전기의 문신이다. 1005년(목종 8)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치며 <7대 실록>, <현종 실록> 등의 실록편찬에 참여했고, 문종 때는 문하시중에 올랐으며 공신의 호를 받았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한자와 어구】

滿庭: 정원에 가득하다. 月色: 달빛. 無烟燭: 연기 없는 촛불. 入座: 자리에 들다. 不速賓: 초대하지 않는 손님. // 更有: 다시 ~이 있다. 松絃: 소나무 현. 彈: 타다 연주하다. 譜外: 악보 밖, 곧 악보 없는 악보. 只: 다만. 堪珍: 보배로 여기다. 重: 거듭. 未傳人: 사람에게 전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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