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에너지 시장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독일을 보자
한국 에너지 시장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독일을 보자
  • 박용구 기자
  • 승인 2018.01.31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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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2017년 에너지 시장과 2018년 에너지 전망

문재인 정부 에너지 정책의 변화에 따라 최근 친환경에너지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에너지 전환과 관련해 주목해 볼만한 나라가 독일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과 공동 기획으로 독일의 2017년 에너지 시장과 2018년 에너지 전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편집자 주>

아고라 에네르기벤데 홈페이지. 독일의 에너지 전환정책을 지지하는 과학적, 기술적 근거를 모아 놓은 ‘정보 아카이브’다. © Agora Energiewende

독일에는 ‘아고라 에네르기벤데(Agora-Energiewende)’라는 사이트가 있다. 메르카토르 재단과 유럽기후재단이 함께 만든 정보제공 사이트로, 신재생에너지와 에너지 전환과 관련해 다양한 자료들을 제공하는 곳이다. 에네르기벤데는 우리말로 에너지 전환이라는 뜻으로, 독일 내에서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아고라 에네르기벤데는 단순히 신재생에너지 관련 뉴스를 홍보하거나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는 곳은 아니다. 여기는 뉴스포털이나 커뮤니티보다는 전문자료를 제공하는 논문이나 보고서 서비스에 가깝다. 게재되는 자료들도 과학자들의 연구나 인터뷰, 연구현장 취재 자료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종종 믿을만한 출처로 인용되는 곳이기도 하다.

아고라 에네르기벤데가 발표한 자료집의 표지. 독일의 전력시장을 분석하고 2018년을 전망한 자료다. © Agora Energiewende

아고라 에네르기벤데에서 최근 2017년 전력시장을 결산하고 2018년을 전망하는 자료를 내놨다. 이 자료에는 2017년의 전력시장에서 10개의 주요 현황이 간추려 정리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눈여겨 볼 부분이 많다. 10가지 주요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독일의 재생에너지 비율. 2020년 목표인 40%에 거의 근접했다. 자료출처: AG Energiebilanzen 2017

재생에너지, 독일 전력 수요량의 36.1%를 차지

우선 독일에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역대 최대량인 28.7TWh의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했다고 한다. 비율로 따지자면 자그마치 독일 전력 수요량의 36.1%를 차지한다. 다만 교통 분야와 1차 에너지원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13.1%에 그쳐 대조를 이루고 있다. 결국 에너지 전환이 발전 분야에서는 예상보다 빠르고, 교통 분야에서는 예상보다 느린 셈이다. 물론 2017년에 엄청나게 많은 풍력발전기가 건설됐고, 바람도 유독 셌다는 점은 고려해야할만한 부분이다.

독일 1990년부터 2017년까지 에너지원별 발전량 변화.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늘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료출처: AG Energiebilanzen 2017

그렇다면 화석연료와 같은 전통적인 에너지는 어떨까? 독일에서 석탄 사용량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2017년에는 1990년 이래 가장 적은 소비량을 기록했을 정도다. 원자력 역시 지속적으로 비율이 줄어들고 있다. 다만 여기에도 양면성이 있어서, 석유와 천연가스의 사용량은 큰 폭으로 늘었다고 한다. 화석연료를 포함해서 ‘태워서 에너지를 얻는’ 연료의 사용량 전체를 두고 보면 큰 증감은 없었다는 말이 된다.

독일의 에너지 사용량 그래프. 전력사용량과 1차 에너지원 사용량 모두 기대만큼 줄어들지는 않고 있다. 자료출처: AG Energiebilanzen 2017

난방이나 산업에 사용하는 1차 에너지원과 전력 사용량 전체를 두고 보면 0.8% 정도 상승했다고 한다. 아주 소폭 상승이기는 하지만, 에너지 전환정책 중 에너지 효율 향상 부분에서는 빨간불이 켜진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2020년까지 1차 에너지원 사용량은 20%, 전력사용량은 10% 줄이겠다는 에너지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사용량이 줄어들어야지 조금이라도 늘어나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독일 내에서는 에너지 사용량 감축이라는 정책목표에 수정이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경제성장과 인구증가에 더해 추워진 날씨 등이 원인인 것으로 진단된다. 지구의 평균기온 증가에 따라 역설적으로 곳곳에서 이상한파가 나타나고 있는데, 독일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독일의 온실가스 배출 현황. 2015년부터 3년째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자료출처: UBA 2017

온실가스 배출량은 별반 줄어들지 않아

또 한 가지 안 좋은 소식은 재생에너지 사용량이 확 늘었는데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별반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1990년 배출량보다 27.6% 적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재생에너지 비중이 확대돼서 탄소배출량이 소폭 줄었지만, 1차 에너지원과 교통 부문에서 도로 늘려놨기 때문이다. 2017년 말 기준으로 2020년 목표 대비 1억 5500만㎥나 더 많은 상태라고 한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1990년 배출량 대비 40%를 줄이겠다’던 당초 정책목표에 못 미치는, 30% 감축에 그칠 전망이다.

독일의 전력 수출 현황. 2017년 10월 자료. 독일은 유럽의 대표적인 전력 수출국가다. © sandbag

다만 흥미롭게도 재생에너지가 ‘대체’가 아닌 ‘주요’ 전력원으로서 나름의 역할은 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7년은 독일이 전기 수출량 기록을 갈아치운 해였다. 독일에서 생산된 잉여 전력은 2016년의 56.1TWh에서 2017년 60.2TWh로 늘어났다. 여전히 오스트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등의 나라들이 주요 고객이다.

독일 전력 단가 변화. 전력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으로, 실제 전기요금과는 차이가 있다. 2016년까지 하락하다 다시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료출처: EEX 2018

아쉬운 점은 늘어난 전력이 저렴하진 않다는 것이다. 석탄과 원자력의 빈자리를 재생에너지가 채워주면 좋을텐데, 현실은 아직 그렇지는 않다는 증거다. 여전히 안정성 면에서 재생에너지가 화력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결국 석탄과 원자력 비중이 줄어든 만큼 천연가스와 석유 의존도가 높아졌다. 현실은 이 두 가지 연료가 결코 싸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유럽의 천연가스 시장에서 러시아의 입김이 아주 강하다는 정치적인 문제도 한몫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18년에는 전력 가격이 사상 최초로 1kWh에 30센트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는 날씨와 수요를 예측하고 이에 따라 변화하는 가격에 대응해야 한다. 이에 따라 전력을 분배하는 ‘유통업’도 중요한 산업군으로 부상하고 있다. © SteadySun

풍력과 태양광 발전의 숙제, 널뛰기 가격

이와 함께 풍력과 태양광 발전 비중의 증가도 새로운 숙제를 안겨줬다. 바로 ‘널뛰는 가격’이다. 재생에너지는 기상상황이나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큰 폭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이에 따라 전력 가격도 크게 변동한다. 전력 수요는 큰 변동 없이 일정한데 공급이 오락가락 하니 가격도 그에 따라 변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2017년 한 해 동안 유독 전력생산량이 많았던 146시간 동안에는 전력 가격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반면 MWh당 100유로가 넘을 때도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수요조절이나 전력저장시스템 구축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일정하던 전력시장이 변동성이 큰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BMW에서 만든 전기자동차 i3. 독일의 전기차 시장은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도로는 화석연료 내연기관이 주를 이룬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인프라나 전력 소비단가도 그 원인 중 하나다. © BMW

풍력과 태양광은 ‘규모의 경제’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두 가지 발전방식 모두 2017년에 비용이 큰 폭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이러한 비용 감소가 시장에서의 전력 가격에 바로 반영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화력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전력원의 비중이 여전히 낮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내 예측으로는 2023년부터 이러한 비용 감소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즉, 2023년이 지나서야 전력 가격이 내려갈 기미를 보일 거라는 뜻이다.

군트렘밍엔 발전소. 왼쪽에서 두 번째 냉각탑에 있는 B 발전소가 2017년 말 폐로 수순을 밟았다. 독일의 여론은 원전과 화력 축소에 긍정적이다. © Felix König

여러 긍정적 신호와 부정적 신호가 혼재된 가운데, 독일인들은 청정에너지로의 전환 정책을 굳건하게 지지하고 있다. 석탄화력과 원자력 축소에 대해서도 대체로 찬성하는 입장이다. 다만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선제적으로 추진함에 따라 제법 오른 전기요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청정에너지로의 전환 정책 지속될 전망

요약하자면, 2018년에도 비슷한 추이는 지속될 전망이라고 한다. 군트렘밍의 B원전이 2017년 말 폐쇄됐고, 1.8GWh 정도의 석탄 및 화력발전소가 문을 닫을 예정이라고 한다. 당연히 이는 재생에너지로의 대체다. 이에 독일의 전력회사들은 풍력은 4GW, 태양광은 2GW 이상 증설할 계획이다. 이는 폐쇄되는 원전이나 화력발전소의 발전용량을 커버하고도 남는 양이다.

이와 같은 독일의 상황은 우리에게 여러 시사점을 준다. 독일이 기술적으로 더 앞서 있고, 국토도 넓지만 일조량이 많지 않고 바람이 변덕스럽다는 점에서 재생에너지 발전에 딱히 유리하지 않기로는 우리와 비슷하다. 그렇다 보니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독일이 겪는 변화는 우리에게 좋은 참고서가 되는 셈이다.

독일은 풍력발전에 매우 적극적이다. 사진처럼 풍력발전기가 늘어선 풍경은 고속도로 곳곳에서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Financial Tribune

우선 재생에너지의 성장세가 ‘기록적’이다는 점이다. 2017년 기준 독일은 전체 전력 소비량의 36%를 재생에너지로 수급하는 데 성공했다. 선진 산업국가로서는 놀라운 수준의 재생에너지 비율이다. 재생에너지의 성장을 이끈 것은 다름 아닌 풍력이다. 독일의 풍력은 원자력과 석탄화력의 발전량을 넘어섰다고 한다. 난방과 교통 분야에서 재생에너지 활용이 다소 지연되고 있기는 하지만 발전 부문에서 이 정도 수준의 재생에너지 비율을 유지한다면 2020년까지의 재생에너지 목표는 무리없이 달성할 수 있다고 관측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에너지 소비량이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것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재생에너지라고 해도 공해나 환경 영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전력생산 자체를 최소화하는 것이 지속가능성이나 친환경성으로 봤을 때 가장 이상적이다. 그래서 에너지 소비 효율화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에너지 전환을 이끄는 두 축 중 하나가 된다.

독일의 패시브 건축물. 태양전지와 통풍, 채광을 활용해 에너지 사용량을 크게 줄였다. 독일은 에너지 효율화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 Sinz Architekten

에너지 소비 효율화는 에너지 전환을 이끄는 두 축 중 하나

그런데 재생에너지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독일에서조차도 2017년의 총 에너지사용량이 증가했다는 말은 곧 전력소비량을 줄이기에는 에너지 소비 효율화 기술이 아직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경제는 계속 성장하니 그만큼 에너지 수요도 늘어나는데, 이를 상쇄하려면 적지 않은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2017년 독일의 경제성장률이 대략 2.0% 정도로 예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에너지소비의 0.8% 증가도 꽤나 선방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독일의 사례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둘러싼 논쟁 중 두 가지에 대해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전환이 세계의 흐름에 비해 느리다고 질타하는 쪽에서는 전력수요량 예측이 너무 과한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에너지 효율 향상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 놓은 것 아니냐고도 비판한다. 그런데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 경제성장률을 고려했을 때, 에너지소비량을 지금보다 줄이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전력소비량 예측을 과하다 싶을 만큼 넉넉하게 잡는 것도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전기와 같은 필수재는 부족한 것보다 남는 것이 더 문제를 해결하기 쉽기 때문이다.

아울러 독일이 구축하고 있는 ‘슈퍼그리드’는 우리에게 좋은 참고가 된다. 독일은 북해의 해상풍력에서 전력을 끌어오는 고압직류송전선(HVDC)을 비롯해 독일 전역을 연결하는 송배전망과 이를 제어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우리 역시 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전력망과 전력시장의 재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적재적소에 전력을 공급하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때

반면 전통적인 에너지원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정부가 제시한 재생에너지 비율이 너무 높은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다시 독일의 사례를 보면 재생에너지 30%가 불가능하기만 한 목표는 아닌 것으로 읽힌다. 우리나라와 독일 사이에 기술이나 정책, 산업환경의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독일에서의 재생에너지 성장세만 놓고 보면 전력 포트폴리오 변화에 대해 그리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어 보인다.

결국 문제는 전력시장으로 귀결된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목표치만큼 늘리는 것은 가능하긴 하다. 그러나 전력수요를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재생에너지 비율이 높아지더라도 현재의 전력 소비구조에 충격이 최소화되도록 안정적인 전력 배분 구조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지 않겠냐는 얘기다.

독일의 사례에서 살펴봤듯, 전력시장은 점점 공급을 예측하기 쉽지 않은, 변동성이 큰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이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따라 최소 비용으로 적재적소에 전력을 공급하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때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 분야에서는 다소 뒤처져 있으니 말이다.

*이 기사는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과 공동 기획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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