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머리에 눈이 쌓여
높은 산머리에 눈이 쌓여
  • 정규철 인문학연구소 학여울 대표
  • 승인 2018.01.3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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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철 인문학연구소 학여울 대표
정규철 인문학연구소 학여울 대표

겨울이면 높은 산머리에 눈이 쌓였다가 사라지곤 한다. ‘화무는 십일홍’이라는데 남녘의 설경은 십여 일을 넘지 못하는 것 같다. 북부지방에 비해 기온이 높고 따뜻해서 그럴 것이다. 높은 산 밑에 사는 사람들은 사시장철 무등(無等)을 타서 그런지 계절 감각이 남다르다. 산머리에 눈이 내려 쌓이면 가슴이 설레고 춥다는 생각보다는 서늘한 기분이 들어 들뜬다. 눈은 차고 맑고 깨끗해서 좋다. 어둔 밤 창밖에 소리 없이 눈이 내리면 보통 사람일지라도 밤새 뒤척이기 마련이다.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창문을 열면 산머리에 쌓인 눈이 하늘에 닿아 있다.

‘Top of Europe’이라는 알프스 정상을 떠올린다. 만년설은 먼지가 내려앉아 희끄무레하지만 무등산에 쌓인 눈은 눈부시고 찬란하다. 산행을 해본 사람들은 느꼈을 터이지만 무등산에는 소나무 숲이 골짜기와 능선마다 빼곡히 널려 있고 샘터와 너덜, 입석, 서석, 규봉이 주상절리를 이뤄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무등의 제 일경이라고 할 수 있는 규봉은 금강산 한쪽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산행을 하다보면 숨을 돌려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솔밭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바람 소리를 듣는다. 아득히 먼 태고적 정적을 깨는 듯한 환상에 빠진다. 바람을 타고 온 푸르고 청정한 기상이 가슴을 파고들면서 삶에 대한 의욕을 샘솟게 한다.

소나무는 지구촌 곳곳에 서식하지만 우리 겨레에게는 각별한 데가 있다. 소나무와 더불어 살아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한옥은 우리 주거 문화의 상징이다. 다소 불편함이 없지 않으나 사람이 사는 보금자리로서 지구촌에서 으뜸가는 건축 예술이다. 소나무는 곧게 자라 나무들 가운데 우뚝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발 300m 이하의 백두산에서부터 한라산 1800m 고지에서도 자란다. 응달이나 양지쪽을 가리지 않으며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옛 시인은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 봉래산 제 일봉에 낙낙장송되었다가 / 백설이 만건곤할제 독야청청하리라‘고 읊었다. 온 천하에 눈이 가득 쌓여도 홀로 푸르고 푸르겠노라는 조선 선비의 ‘고절(孤節)’을 노래한 대표적인 시조다.

뿐만 아니라 소나무의 질긴 생명을 예찬했다. 땅위에 사는 모든 동식물은 때로 자연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다. 어쩌다가 폭설이 퍼붓고 칼바람이 후려치면 나무들은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중동이 부러지고 생솔가지가 찢어지면서 우지끈우지끈 산속은 한바탕 광기에 휩싸이기도 한다.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썩은 나뭇가지들이 수북이 쌓인다. 흐르는 물이 자정작용(自淨作用)에 의해 맑아지듯이 대자연은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강한 생명력을 키워 불멸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입춘이 지나고 나면 멀지 않아 해동(解凍)이 될 것이다. 얼었던 땅이 녹고 새싹이 돋아나는 희망찬 새봄이 성큼 다가오리라.

보수정권이 파탄 낸 남북관계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해빙기를 맞는 듯하다. 북한이 올림픽 참가를 결정하면서 단일팀 구성을 비롯한 제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당국자들이 휴전선을 넘나들고 있다. 놀랍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해방’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국토는 두 동강이 났고 겨레는 ‘이산(離散)’이라는 뜻밖의 시련에 부닥치고 말았다. 휴전선은 분단의 상징물이다. 이즈음에 우리 고장 출신 박봉우 시인의 「휴전선」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휴전선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싶다.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향한 항시 어둠 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싸늘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는가.

  모든 유혈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번 불고야 말 독사의 혀 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리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반응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이 시는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자 작가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해방과 분단,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은 시인은 ‘전란의 참혹한 체험’을 이 시에 담았다. 1950년 한국전쟁은 155마일 단장의 휴전선을 남기고 포성이 멈춘 채 65년을 맞고 있다. <휴전선>은 이러한 분단시대의 상징을 노래함으로써 전후세대의 아픔을 대변해주었다. 휴전이 성립되기 전후의 사정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해 놓은 김재홍 선생의 글 <한국전쟁과 현대시의 응전력>도 음미해 볼 만하다.

“휴전이 성립되자 남과 북의 긴장 관계는 휴전선이라는 또 다른 분단의 철조망을 굳게 드리우게 되었다. 미국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따라 유리해진 군사적 우위성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 대한 주변 열강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UN군의 북한 진입 작전을 소극적인 차원에서 전개하였다. 실상 미국과 소련, 중공 등 3개국의 이해와 세력이 맞닿는 한반도가 단일국의 지배 아래 들어갈 것을 염려한 결과 미국은 한반도의 전쟁을 대소련 봉쇄작전, 또는 대중공 봉쇄작전의 일환이라는 관점에서 더 이상 전쟁을 확대하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려 시도했던 것이다. 한국 통일의 실현이라는 정치적 목표는 다만 군사작전의 결과에 따라 우연히 달성될 수 있는 목표(a target of opportunity)에 불과할 뿐, 그 자체가 군사작전 수행을 통해 달성되어야 할 군사적 목표는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민족적인 휴전 협정 반대에도 불구하고 1953년 7월 27일에 미국과 중공, 그리고 북한의 주도 아래 휴전 협정이 조인되고 민족과 국토는 휴전선이라는 철조망으로 인해 두 동강이 나고 말았던 것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강대국의 농간에 휘둘린 감이 없지 않다. 정치와는 별개로 국민 개개인이 갖는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인식과 이를 종합하고 분석 평가하면서 적절한 대응을 못해서 제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농경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땅을 섬기면서 살아온 사람들은 전투적이지 못하다는 지적과 함께 서부 개척시대 건맨들(gunmen)의 후예인 양키(yankee)처럼 도전적이지도 못하다. 그래서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이라는 <휴전선>의 고발적인 상황 속에서는 강대국의 세력 각축과 이데올로기 싸움의 질곡, 어쩔 수 없이 서로 죽이고 죽여야만 하는 한민족의 비극적 상황이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6.15 정신이 다시 살아나고 남북 간의 교류 협력의 시대가 활짝 열리도록 전략적인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으로 가는 디딤돌이 되도록 우리 다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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