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9) 독서(讀書)[2]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9) 독서(讀書)[2]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1.1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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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학문의 이치를 깨달아 이제 즐겁기만 하니

자본주의 사회와는 다르게 조선이란 사회는 철저한 신분제도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다소 달랐을 지라도 많은 선비들은 돈이 없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드렸다. 재산이 없으면 그저 띠풀 집일지라도 괜찮다는 낙관론에 사로 잡혀 살았다. 끼니를 앉힐 식량이 없어도 안빈낙도 하며 삶을 즐겼다.

거유 서경덕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기철학(氣哲學)을 체계적으로 완성하면 그만일 뿐, 부귀와 재산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讀書(독서)[2] / 화담 서경덕

나물 캐고 고기 잡아 그렁저렁 살면서

달을 읊고 바람 쐬며 정신을 씻어 보는

내 학문 이치 깨달아 어찌 인생 헛되리.

採山釣水堪充腹      詠月吟風足暢神

채산조수감충복     영월음풍족창신

學到不疑知快活     免敎虛作百年人

학도불의지쾌활     면교허작백년인

 

내 학문의 이치를 깨달아 이제 즐겁기만 하니(讀書2)로 제목을 붙여본 율(律)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작자는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1489~1546)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나물 캐고 고기를 낚아 그런대로 살면서도 / 달을 읊고 바람을 읊으면서 정신을 맑게 씻네 // 내 학문의 이치를 깨달아 즐겁기만 하게 되니 / 어찌 인생이 결코 헛되다고 하겠는가]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책을 읽음 2]로 번역된다. 시인이 전구에서 읊은 시심은 [글을 읽을 때 큰 뜻을 품으니 / 가난의 쓰라림도 달게 받아진다 // 부귀에 내가 어찌 손을 댈 것인가 / 산과 물에 포근히 안기고 싶다]이다. 부귀와는 결코 영합하지 않고 산과 물에 포근히 안기겠다는 시인의 결연한 자기 의지가 돋보이는 표현이다.

시인의 전구로 이어지는 작품에서 안빈낙도의 모습을 본다. 나물 캐어 먹고 물고기를 손수 낚아 그럭저럭 살련다며 다음 단계의 삶을 구상한다. 채식만 먹겠다는 의지에 이어서 동산에 떠오르는 달을 보며 시를 읊고, 계절마다 바뀌는 바람도 쏘이면서 그렇게 여유롭게 살고 싶었으리. 이 보다 절경의 지경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자는 이제 자연과 더불어 안빈낙도하는 생활을 하고나니 정신이 맑고 상쾌했으니 이젠 학문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는 심회를 담게 된다. 내 학문의 이치를 깨달아 즐겁기만 하니, 어찌 인생이 결코 헛되다고 하겠는가라고 했다.

이런 삶의 철학을 가진 화자는 정말 멋있게 일생을 지냈을 것이며, 인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깨달았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나물 캐고 고기 낚고 달을 읊고 정신 맑게, 학문 이치 즐거우니 인생 결코 헛되지 않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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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복재(復齋) 서경덕(徐敬德:1489~1546)으로 조선 중기의 학자이다. 하급 무관 집안에서 태어나 거의 독학으로 공부하였다. 우주 근원과 자연의 질서를 탐구하는데 학문의 뜻을 두고 있었기에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고 여러 관직에 천거되었으나 번번이 나가지 않았다 한다.

【한자와 어구】

採山: 산나물을 캐다. 釣水: 물에서 고기를 낚다. 堪充腹: 충분하게 배 채우며 견디다. 詠月: 달을 읊다. 吟風: 풍월을 읊다. 足暢神: 정신을 넉넉히 하다. // 學到: 학문이 이르다. 不疑知: 알아서 의심이 없다. 快活: 삶이 즐겁다. 免敎: 배움을 면하다. 虛作: 헛되이 짓다. 百年人: 사람의 평생.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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