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권리
일할 권리
  • 문틈 시인
  • 승인 2018.01.10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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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세밑 송년 모임에 갔다가 작은 충격을 받았다.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재치 있는 건배사를 하면서 술을 권하는 것까지는 예년과 다를 바 없었다. 어느 한 참석자의 차례가 되었을 때 아들이 대기업에 막 취업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순간 좀 비껴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가 싶었는데 좌중 모두가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나도 따라 박수를 쳤다. 그 분위기는 마치 고시에 패스하거나 공직에 임용된 것처럼 대단했다. 그제서야 나는 정신이 깨어났다.

요즘 자녀의 취업문제는 그만큼이나 온 집안은 물론 그 가문의 빅뉴스를 넘어서 그가 속한 공동체의 축하를 받을 만한 주제라는 것을 새삼 알아차렸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조카 아이의 취업 문제가 형제 집의 말 못할 이슈가 되어 있겠다는 생각에 미쳤다.

취업은 81만 명 공무원 채용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국가적인 큰 문제라는 것도 실감한 순간이었다. 취업은 사회에 갓 나온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나이가 차면 결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하는데 오늘 우리 사회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학교 나오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그런 경로가 어긋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슬쩍 겁이 나기도 한다. 취업이란 생각해보면 인권에 관한 문제로 볼 수 있다. 인권은 성별, 종교, 정치적 견해, 신분이나 지위 등 그 어떤 것에도 차별됨 없이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를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기본 개념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빠졌다고 보는데 그것은 ‘일할 권리’이다. 일할 곳이 없어서 무직자로 아까운 젊은 날을 보낸다는 것은 심각한 인권 침해라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국가는 마땅히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서만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성취감을 느끼고 일자리를 통해 사회와 연대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마트나 편의점, 카페 같은 데서 새파랗게 젊은 청년들이 직원 혹은 알바로 일하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서글프다. 이웃나라 일본은 대학 3학년이면 미리 취업 예약이 될 정도로 구인난이 심각하다는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대학원을 나와도 일자리가 없어 노는 젊은이들이 시글시글하다.

몇 달 전 공무원 2,500명을 모집하는데 30만 명이 응시했다는 뉴스를 보고 경악했다. 갑자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어떤 외국 투자자는 공무원 모집에 올인하는 한국의 현상을 보고 한국에 투자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일본은 저렇게 잔칫집 같은데 왜 우리는 파장 같은 분위기일까. 일본은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일자리가 차고 넘치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청년들에게 일자리가 꿈에 떡 얻어먹기처럼 희귀한 일이 되어버렸을까.

매스컴에 나와서 떠드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일자리 사태가 더 나아질 가능성이 밝지 않다는 것은 나 같은 서생도 능히 짐작이 가는 바다. 그럴 것이 마을버스에서부터 사무실의 모든 기기들이 대부분 중국제 일색으로 되어버렸고, 우리의 마지막 달러 박스 구실을 하는 반도체마저 중국에게 언제 따라 잡힐지 모를 지경에 처해 있다는 소식이고 보면 보통 일이 아니다. 이 일을 어찌할꼬.

나 같은 보통 사람의 걱정은 이렇다. 4차 산업혁명으로 전 세계가 무인화, 자동화, 인공지능화하고 있어서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 세계적 추세인데 중국까지 우리 산업을 덮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다.

물론 당장에 우리 경제가 끝장나는 것은 아니고, 가발부터 시작해온 우리의 수출 전선이 쌓아온 내공이 만만치 않을 것이므로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활로를 찾아낼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지만 걱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의 새해 소망은 새 정부가 미래 이야기를 좀 많이 다양하게 해주었으면 한다.

과거를 부수고 고치는 소리는 크게 들리는데 미래로 나아가는 마차 바퀴소리는 잘 안 들리는 것 같아서다. 비전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이쯤에서 내가 도무지 이해 못할 것은 아베노믹스가 실패하고 있다고 떠들어대던 아베 초기의 한국 언론이 요새는 일본의 성공 이야기로 넘쳐난다. 한국 청년들이 일본으로 취업하러 간다고도 한다. 어찌하여 일본은 되고 우리는 안 되는가. 일본 기업은 구인난으로 75세까지 취업을 장려한다는데 그들이 너무 부럽다. 이렇게 나가다가 취업난이 우리 공동체의 집단 우울증을 초래할까 저어된다.

새해 나라와 개인이 잘되기를 바라는 덕담으로 모임은 끝나긴 했지만 여느 해와 달리 조금 우울한 분위기였다. 어쩌면 내가 과민하게 나라 걱정을 해서 그렇게 느껴졌는지는 모르겠다. 정부와 기업이 손을 잡고 청년 일자리 마련에 적극 나서주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자식이 취업한 당연한 일에 열광적으로 박수를 안쳐도 되게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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