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7) 기정(寄呈)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7) 기정(寄呈)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8.01.03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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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된 기러기 울음소리 더는 애처로워 못 듣겠네

여인의 심약함을 말이나 글에서 읽는다. 어디 그것이 여인에만 한정할 수 있겠는가마는 시상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시를 쓰는 조선 여인의 대체적인 특징은 기녀나 소실이었다는 점에 주의할 일이다. 그러다 보니 행여 임이 오시지 않나 규방에서 기다리는 심회가 글 속에 나타나면 빼곡해진다.

시인도 예외는 아니었던 같다. 새벽녘까지 밤새워 기다리는 심정을 자연에 비유하면서 꿈길마다 만났던 심회로 읊었던 시 한수를 번안해 본다.

 

寄呈(기정) / 반아당 박죽서

호롱불에 밤을 새워 동이 트는 새벽녘에

홀로된 기러기 울음 애처로워 못 듣겠네

임 향한 굳센 마음이 꿈만 깨면 사라지리.

燭影輝輝曙色分      酸嘶孤雁不堪聞

촉영휘휘서색분      산시고안불감문

相思一段心如石      夢醒依稀尙對君

상사일단심여석      몽성의희상대군

 

홀로된 기러기 울음소리 더는 애처로워 못 듣겠네(寄呈)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반아당(半啞堂) 박죽서(朴竹西:1817~1851)로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호롱불 밝혀 밤새우고 동이 트는 새벽녘에 / 홀로된 기러기 울음소리 애처로워 못듣겠네 // 임 향한 이 내 마음은 돌처럼 굳세건만 / 꿈을 깨면 아스라이 사라지는 그대 모습이]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그 임께 마음을 부쳐드림]으로 번역된다. 시인은 뛰어나게 시를 잘 지은 천재성을 보였으며, 시문은 대체적으로 서정적인 면이 강했다. 조선 여인의 특징인 애타게 그리는 여심(女心)과 기다림에 지친 규원적(閨怨的) 소제로 한 시문을 남겼다. 그의 반아당(半啞堂)이란 호에서 보여주듯이, ‘반벙어리’라는 뜻에서 그의 삶을 대강이나마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녀로 태어나 소실로 생을 마감했으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인은 촛불을 밝혀 놓고 새벽녘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유는 다음 연으로 이어진 시상 주머니 속에서 살며시 꺼내게 된다. 홀로된 외기러기 울음을 차마 들을 수 없다는 자기 처지와 어울린 시상을 일으킨다. 임이 없는 밤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처지까지도. 꿈길 속 천리라도 뒤따라 갈 수 있으련만 꿈만 깨고 나면 사라졌으니 그리움을 더했을 것은 분명하다 하겠다.

심약한 화자의 심정을 살며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밤마다 임을 향한 시인의 마음은 돌처럼 굳고 단단하건만 꿈길 속에서 자주 보았던 임의 모습이 멀리 사라졌다는 심정을 잔잔하게 읊고 있어 정이 몽땅 간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동이 트는 새벽녘에 기러기 울음 애처로워, 임을 향한 내 마음엔 사라지는 그대 모습’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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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박죽서(朴竹西:1817~1851)로 조선 후기의 여류시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일찍이 아버지 박종언으로부터 글을 배워 소학과 경사, 그리고 고작시문 등을 탐독하였고, 한시를 잘 지었다. 이후 글이 성숙한 후로는 중국의 소동파와 한유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한자와 어구】

燭影: 호롱불 그림자. 輝輝: 광채를 발하다. 曙色分: 새벽빛이 밝다(열리다). 酸嘶: 외롭게 울다. 무딘 울음. 孤雁: 외로운 기러기. 不堪聞: 듣지 못하다. // 相思: 임을 생각하다. 一段心: 이 마음. 이 한단의 마음. 如石: 돌과 같이 굳다. 夢醒: 꿈을 깨다. 依稀尙: 오히려 희미하다. 對君: 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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