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 문틈 시인
  • 승인 2018.01.02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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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사고였다. 제천 화재 사고 말이다. 불이 나 29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숨졌다. 아까운 생명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사람이 5000만명이나 살다보니 이 땅에선 날마다 별의별 사건 사고가 일어난다.

하지만 손을 잘 썼으면 구할 수도 있었을 생명을 잃어버리다니 생각할수록 가슴이 미어진다. 내가 그 사우나에 있었다면, 하고 바꾸어 상상해보니 검은 연기에 휩싸여 기침을 하고, 덮쳐오는 죽음의 공포에 빠진 내가 끔찍스럽다.

뒤늦게 어느 신문에 그 사우나에 있던 한 여성이 검은 연기가 밀려들어오는 위급한 상황에서 119에 SOS를 요청한 전화 녹취록이 공개되었다. 단말마와도 같은 다급한 구조 요청의 목소리가 그날의 참상을 생중계하는 것만 같다. 몇 대목을 인용한다.

“빨리 와요. 불났어요. 빨리 와. 찜질방.”

 ‘대피하세요. 빨리 대피하세요.’

 “대피할 데가 없다고. 빨리요. 빨리. 빨리. 빨리. 어, 어떡해. 빨리요. 빨리. 왔어요? 빨리요. 빨리.”

 ‘예. 출동하고 있어요.’

 “빨리요. 빨리 빨리. 왔어? 왔어? 빨리. 다 죽어. 사람 다 죽어. 빨리. 빨리. 창문 열어. 창문 열어. 빨리. 죽어. 사람 죽어. 빨리.”

 ‘몇 층이에요? 몇 층? 몇 층?’

 “2층 여자. 여자. 빨리.”

 ‘알겠습니다.’

 “빨리 빨리. 숨 못 쉬어. 빨리 빨리. 우리 죽어. 빨리. 나 살아야 돼. 빨리. 아 빨리. 아저씨 빨리. 아저씨 빨리. 아저씨 아저씨 빨리 살려줘.”

 ‘구조대 빨리 2층으로. 여자, 여자 2층.’

 “빨리 빨리. 아 빨리. 아 빨리. 아저씨 아저씨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아저씨 살려줘. 아저씨 아저씨 살려줘. 제발 제발 살려줘.”

그러나 수십 번의 다급한 ‘빨리’ 구조요청에도 불구하고 여탕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숨지고 말았다. 그중에는 딸, 엄마, 외할머니 3대가 함께 숨진 기막힌 참사도 있었다.

“빨리, 빨리, 빨리…” 하는 목소리가 내 귓전을 때리는 듯하다. 어디선가, 빨리, 빨리, 빨리, 하고 지금도 하늘을 떠돌며 비명에 간 영혼들이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전 정권들이 벌려놓은 지난 비리들을 파헤쳐 적폐를 청산하는 것도 좋지만 진짜 적폐는 안전 불감증에 걸려 있는 오래된 우리의 이런 고질병이 아닐까.

 빨리, 빨리, 빨리, 소리는 화재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공사장에서, 학교에서, 도로에서, 병원에서, 버스에서, 배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이 나라 구석구석 어디에서든 시시각각 들려오는 것만 같다.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나는 참담한 슬픔과 함께 “어이쿠, 나를 비껴갔네.” 하는 안도인지 무엇인지 모를 감정이 통증처럼 옆구리를 스쳐간다. 정말 이 땅에 살아가는 일이 어떤 때는 아슬아슬한 운수에 달린 것 같다. 시쳇말로 매일 복불복으로 살아남아 있는 것 같다. 심하게 말하면 바깥에 나갈 때는 눈을 질끈 감고 운에 맡기고 행차해야 하는 것이다.

안전사고는 철저한 원칙 준수와 주의를 기울이면 막을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흔히 인명 사고가 일어나면 당국을 탓하고, 당국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수사(修辭)를 붙이고는 잊어버린다. 그러기에 ‘다시는 이런 일’이 늘 반복된다.

GDP가 3만불이 안되어도 좋으니 제발 안전사고를 줄여주었으면 한다.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을 표방한 새 정권이 해야 할 진정한 적폐청산이 아닐까 한다.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도로를 점하는 주차, 역주행, 음주운전, 부실한 소방안전 검사 말고도 건축허가, 개증축, 준공검사 등이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모든 안전 매뉴얼들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원칙을 지키지 않는 당국과 국민 모두에게 안전사고의 책임이 있다.

하기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한다, 핵실험을 한다, 해도 대피 훈련 한 번 하지 않는 무신경한 우리에겐 무슨 사고는 늘 사후약방문에 그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연간 안전사고 사망자수는 거의 3만 명에 달한다. OECD국가 중에서 1위다. 상가에 불안스레 매달려 있는 간판들, 교통사고, 익사, 추락, 화재 같은 안전사고 요인들이 전쟁터의 지뢰처럼 도처에 널려 있다.

부산 실내 사격장 화재사고로 일본인 관광객들이 사망한 사고, 씨랜드 화재사고로 아들을 잃고 그만 외국으로 이민 간 국가대표 스포츠 선수의 비극이 아직도 뇌리에 선연한데 화재사고는 계속 일어난다. 이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은 엄청난 행운에 의지해 살아가는가 싶다.

그래서인지 하루에도 몇 번씩 가족과 연락이 안 되면 불안해서 휴대폰에 대고 안부를 확인한다. “지금 어디야?”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린다. “빨리, 빨리,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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