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멋을 찾아서(39)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5호 참빗장 고행주
남도의 멋을 찾아서(39)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5호 참빗장 고행주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7.12.20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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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의 변신, 참빗으로 세월을 빗다
머릿속까지 훑던 참빗의 시원함과 개운함

오래전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현대로 접어들면서 흔히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담양에서 태어나 5대째 가업으로 참빗을 만들고 있는 고행주(82) 참빗장이 없었더라면 아마 참빗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5호인 참빗장은 3년생 대나무로 살을 대어 빗살을 촘촘히 엮어 참빗을 만들어 낸다.

 

전통 수공예 대나무 공예품, 참빗의 명성

예부터 영암, 담양, 나주, 남원 등 일대에서 참빗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전남 담양에서 유일하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뿐만 아니라 세계로 나아가 일본, 중국, 미국 등에서도 담양참빗을 찾고 있다.

고 장인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참빗장으로 담양군 향교리에서 우리 전통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대를 이어 한 집에서 줄곧 살아온 고행주 장인을 담양항교 바로 아래에 위치한 자택에서 만날 수 있었다.

참빗은 조선시대 관아에서 참빗을 만들던 죽소장에서 시작됐다. 크기별로 써울치, 화각소, 진양소, 어중소, 중소, 대소로 나뉜다. 참빗은 워낙 촘촘해서 서캐와 머릿니를 잡는데 사용하기도 했다.

또 머리에 동백기름을 바르고 쓰다듬고 모양을 낼 때 참빗을 이용했기에 없으면 안 될 생활용품이었다.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시원하고 정전기도 생기지 않았다. 참빗은 잘사는 집안에서 딸을 시집보낼 때 혼수품으로 100개씩 넣어 보내기도 했다.

참빗 만드는 일, 6대째 가업 이어

고행주 참빗장이 처음으로 참빗을 접하게 된 것은 10살 때다. 참빗을 만들던 아버지가 시킨 심부름을 다니면서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했다.

고 장인은 “70여 년 전에는 지금과 틀려서 의식주 해결이 어려웠다. 그때 아버지 심부름을 다니면서 들여다보고 시늉을 내보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다”며 “우리 집안은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었다”고 말했다.

고행주 장인의 집안은 증조부 때부터 전수조교인 아들까지 포함하면 6대에 거쳐 참빗을 만들어오고 있다. 다행히 아들이 참빗을 만드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 참빗장 전수조교가 됐다.

고행주 장인은 지난 1986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되면서 책임감이 더욱 커졌다.

그는 “참빗을 만드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일이 힘에 겨울 만큼 버거울 때도 있지만 기분 좋을 때는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며 “사실 마진율이 적으니까 대를 이어가는데 어려움이 있지만, 아들도 나처럼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정한 간격 조정...섬세함 필요

한번 참빗을 만들려면 70회 이상의 제조공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전통 수공예 참빗이 탄생한다. 보통 참빗은 하루 만에 만들어 지기 힘들다. 고행주 장인은 담양에서 생산되는 왕대를 사용하여 매기는 뿔대죽나무, 먹갈나무 등을 사용한다.

빗 가운데 중심에 해당하는 등대와 빗의 양쪽 끝부분에 해당하는 매기를 아교로 붙이는 작업을 하고, 따뜻한 방에서 7시간 정도 건조해야 한다.

보통 고급빗은 120개의 빗살을 만들지만 일반빗은 100개정도로 정교하게 0.4mm의 빗살을 만든다. 붉은 빗살에 해당하는 부분도 단단한 대나무 껍질로 만들어 낸다. 38선이 그어지기 전 1950년대 전에는 빗살 염색을 주로 호장근 나무뿌리로 염색을 했다.

호장근 나무뿌리는 만주에서 수입해야하는 것이었기에 분단이후에는 수입경로가 막혀 참빗을 만드는 사람들이 애를 먹었다. 이후 참빗을 만드는 장인들은 화학염료를 쓰면서 난관을 극복했고, 오색 빛이 나는 참빗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고행주 장인은 “빗살을 만들 때까지 두께를 조정하는 게 가장 어렵다. 70회 이상의 과정이 있기 때문에 잔손이 많이 간다”며 “그 중에서도 45도로 빗살을 깎아내는 일은 장인들도 어려워 하는 작업이다”고 말한다.

그렇게 45도로 각도로 빗살을 매끈하게 깎아 내고, 얼대로 빗살을 하나하나 일정한 간격으로 조절한 ‘빗살 간격 고루기’ 작업이 끝나면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발라 광을 내기도 한다.

산업화로 인한 변화로 참빗 사라져가

고 장인은 등대에 인두로 지져 무형문화재작 혹은 그림글 새겨 넣기도 한다. 그렇게 참빗을 만들어 내는데 10~15일 동안 500개 정도의 참빗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참빗은 담양참빗보다 영암참빗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몇 있다. 대나무의 고장 담양에서는 영암과는 반대로 이미 수천가지의 죽세품이 넘쳐났기 때문에 참빗만이 주목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1970년대 산업화가 되면서 두발 간소화와 파마의 유행으로 이제는 참빗을 찾는 사람보다는 플라스틱 빗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수요가 줄어들게 되면서 참빗을 만드는 사람도 줄어들게 됐고, 일상생활에서 보기 힘든 전통 생활용품이 되었다.

고행주 장인은 “현대인들의 생활흐름에 맞지 않은 생활용품들이 사라지려고 하니까 문화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며 “요즘은 젊은 핵가족들이 많은데 한 가구에 참빗 하나쯤은 다 있어 머리를 빗는 날을 그려보게 된다”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참빗의 촘촘한 빗살처럼 고행주 장인이 이어가는 전통의 맥이 빠짐없이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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