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5) 대장부(大丈夫)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5) 대장부(大丈夫)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12.2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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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이 이십 세에 나라를 태평하지 못한다면

사람은 꿈을 먹고 산다고 말한다. 남이 장군이 쓴 시조 한 수에서 얼마나 기개가 넘친가를 본다. [장검을 빼어들고 백두산에 올라보니 / 대명천지에 성진이 잠겼애라 / 언제나 남북풍진을 헤쳐 볼까 하노라] 이왕 그림을 그리려면 호랑이를 그려라.

이시애(李施愛)는 함길도 길주 출신 토반으로 세조의 북방 압박 정책에 불만을 품고, 1467년 5월 함길도절도사 강효문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이를 남이 장군 등이 출정하여 평정하는데 성공하고 나서 그가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大丈夫(대장부) / 남이 장군

백두산 돌을 갈고 두만강에 말 먹이며

사나이 이십 세에 나라 평정 못한다면

대장부 칭할 수 있나 그 누군들 후세에.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백두산석마도진      두만강수음마무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

남아이십미평국      후세수칭대장부

사나이 이십 세에 나라를 태평하지 못한다면(大丈夫)으로 시제를 붙여보는 칠언절구다. 작자는 남이(南怡:1441~1468)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백두산에 우뚝 솟아 있는 돌을 칼로 갈아서 다 없애고 / 두만강 물을 말에게 먹여 모두 다 없애 버리려하네 // 사나이 이십 세에 나라를 태평하지 못한다면 // 후세에 누가 (나를) 대장부라고 칭할 수 있으리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사내대장부라면]으로 번역된다. 시인은 한 때 승승장구의 출세가도를 달렸다. 세조가 승하하기 13일 전에 전격적으로 병조판서에 임명되었으나, 예종은 즉위하는 당일 병조판서에서 좌천격인 겸사복장으로 발령했다.

1468년 유자광이 “혜성이 나타나자 묵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을 나타나게 하려는 징조”라고 말했다고 고변한다. 남이가 체포되어 국문을 받은 사흘 뒤 강순․조경치 등과 저자에서 거열형(車裂刑)에 처했다.

이와 같은 배경을 담고 있는 이 시는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지었던 것으로, 정치적 야망과 모반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 같은 기개가 넘친다. 백두산에 우뚝 솟아 있는 돌을 칼로 갈아서 없애고 두만강 물을 말에게 먹여 모두 없애버리겠다고 했다. 그의 비극적인 운명을 보면서 탁월한 무장에게 모반의 혐의는 숙명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된다.

화자의 기개는 이어지는 구절에서도 엿보게 된다. 사나이 이십 세에 나라를 태평하지 못한다면, 후세에 누가 나를 대장부라고 칭할 수 있으리라고 했다. 가장 연소한 나이에 병조판서를 맡았다면 시기와 질투를 받을 만도 했었을 것이니.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백두산돌 칼로 갈고 압록강물 말을 먹여, 사내 이십 미평국이면 대장부라 칭하리오’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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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남이(南怡:1441∼1468)로 조선 전기의 무신이다. 1457년(세조 3) 16세로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세조의 총애를 받아 여러 무관직을 역임했다. 26세에 적개 1등 공신에 책봉됐으며 1468년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이어 병조판서에 발탁됐다. 예종이 즉위하자마자 유자광의 무고로 처형되었다.

【한자와 어구】

白頭山石: 백두산의 돌. 磨刀: 칼을 갈다. 盡: 다하다. 豆滿江水: 두만강의 물. 飮馬: 말을 먹이다. 無: 없다, 다하다. // 男兒: 남아. 남자의 다른 이름. 二十: 이십 세를 뜻함. 未平國: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다. 後世: 후세. 후세 사람들. 誰: 누가(의문사). 稱: 칭하다. 大丈夫: 대장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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