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4) 추야유감(秋夜有感)
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54) 추야유감(秋夜有感)
  •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17.12.1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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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짝 베개 찬 이불엔 잠들어 꿈도 못 꾸네

가을바람 불고 풀벌레 소리가 들리면 대부분 허전함을 느낀다. 왜 아니겠는가. 인생의 황혼도 가을에 비유하고 있는 것을. 그렇다면 질곡(桎梏)의 삶 속에서 훌훌 털고 벗어나야 된다는, 벗어버려야 된다는 자연의 순환 앞에 우리는 고개를 떨 굴 수밖에 없다.

소소한 계절적인 시기에 독수공방으로 밤을 지샌다는 것은 두려움이자 그리움이 앞섰을 것이다. 재촉하는 가을 정경 그림을 그리면서 외롭게 지샌 밤, 잠을 이루지 못하겠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秋夜有感(추야유감) / 김금원

양강의 관사 안에 가을바람 새로 일고

뒷산에는 붉어지고 앞강에는 푸르구나

창가에 벌레 울음에 꿈길 못간 찬 이불.

陽江館裡西風起      後山欲醉前江靑

양강관리서풍기     후산욕취전강청

紗窓月白百蟲咽     孤枕衾寒夢不成

사창월백백충열    고침금한몽불성

외짝 베개 찬 이불엔 잠들어 꿈도 못 꾸네(秋夜有感)로 번역해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김금원(金錦園, 1817~?)으로 여류시인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양강의 관사 안에는 가을바람이 소소히 일고 / 뒷산이 붉어지고만 있는데 앞강은 저리도 푸르구나 // 창가에 비친 달빛은 밝기만 한데 온갖 벌레 울어대니 / 외짝 베개 찬 이불에 잠들어 꿈도 못 꾼다]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어느 가을밤 생각이 있었네]로 번역된다. 시인은 평생 남자로 태어나지 못했음을 한탄하면서 1830년 3월 14세 때 남자로 변장하고 단신 금강산을 유람하여 견문을 넓혀 시문을 지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와서 시랑이며 규당(奎堂)의 학사인 김덕희의 소실이 되었다. 1845년에는 김덕희와 함께 서도와 금강산을 유람하다가 1847년에 돌아와 별장인 삼호정에 살면서 시단을 형성했다고 한다.

시인은 계절이 변하는 즈음에 자연에 흠뻑 취하였다. 양강의 관사 앞에서 가을바람이 일고, 뒷산이 붉고 앞강이 푸른 자연의 경관을 보고 있다. 이러한 때 창가에 달은 밝은데 벌레까지 울어대는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아뿔싸!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곁에 있어야 할 임이 없어서 달콤한 꿈도 꿀 수가 없음을 상상하게 된다.

화자는 열매를 거두고 차가운 겨울을 준비해야 할 늦가을의 스산함 속에서 기다림과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오마던 임이었을까. 멀리 떠난 임이었을까. 외짝 베개 찬 이불을 덮고 있으니 어느 시간인들 차마 잠인들 오겠는가란 시상에서 결구 처리의 진수를 만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양강 관사 소소한 바람 뒷산 붉고 앞강 청색, 달빛 밝고 벌레 울어 외짝 베개 꿈 못 꾸고’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장희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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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김금원(金錦園:1817~?)으로 조선 헌종 때의 여류시인이다. 김덕희란 사람의 소실로 들어갔다. 1830년(순조 30) 3월 남장을 하고 고향을 떠나 여러 곳을 거쳐 금강산을 구경하고 서울에서 김덕희와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어려서부터 글을 배워 경사(經史)에 능통하였다.

【한자와 어구】

陽江: 양강, 충북 영동에 있음. 館裡: 관사 안에. 西風: 서풍. 가을바람. 起: 일어나다. 後山: 뒷산. 欲醉: 취하고자 하다. 붉어지다. 前江: 앞강. 靑: 푸르다. // 紗窓: 창가. 月白: 달빛이 밝다. 百蟲: 모든 벌레. 咽: 울다. 孤枕: 외짝 베개. 홀로 자다. 衾寒: 찬 이불. 夢不成: 꿈을 이루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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