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에 대한 새로운 공상
도로에 대한 새로운 공상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4.2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년 전 독일 아헨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라트"라고 불리는 40대 후반의 여성 교통과장을 만났다. 그는 우리 일행을 안내해 거리 이곳 저곳을 보여 주었다. 그 중에서 차도를 차량통행을 막아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놀이터로 만들어 준 것이 특이했다. 자기가 엄마이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배려가 가능했다고 귀띔했다. 그녀가 한마디 더 덧붙인 것이 있다. 보통 시민들은 거리의 주인이 누구냐고 물으면 언뜻 사람 아니냐고 대답할 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자동차가 거리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주인이어야 할 사람이 손님으로 변했다면서 자신은 사람을 거리의 주인으로 되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 그녀는 분명 사람을 거리의 주인으로 만드는 작업을 열심히 했다. 작은 체구지만 당당하고 꿋꿋하게 그리고 소신을 가지고 도심의 보행자 전용도로를 넓혔다. 지하도를 폐쇄하는 대신 지상에 횡단보도를 복원했다. 주말이면 도심전체에 자동차 출입을 제한하고 소위 "차 없는 도심"을 만들었다. 자전거와 시내버스, 전차를 제외하고는 차량통행을 억제했다. 한때 자동차에 빼앗겼던 도시의 중심은 이제 사람으로 넘치고 있었다. 바로 활력을 되찾은 것이다.

금남로도 그렇게 할 순 없을까. 32번째 지구의 날을 기념한 지난 일요일, 차 없는 금남로를 만들었다. 차가 안 다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편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도로 한 가운데를 걸어 다니고, 뛰어도 보고, 롤러 블레이드나 자전거를 타면서 그 날 하루 금남로의 주인이 되었다. 금남로를 상시 차 없는 거리로 만들 수는 없을까? 운을 뗄 때마다 사람들은 "교통체증"을 염려하면서 반대한다. "교통소통"이라는 가치는 절대적인 것 같다. 느린 것이 빠른 것이라는 역설적 주장이 먹히는 곳은 별로 없다.

사람이 주인 되는 거리를 만들어가자

금남로는 역사적인 자리다. 광주읍성이 있던 곳이고 5·18의 흔적이 역력한 곳이다. 그래서 광주를 대표하는 거리를 꼽으라면 광주사람이나 외지 사람 할 것 없이 금남로를 꼽는다. 이 거리를 원래의 주인인 사람에게 돌려주자. 통과하는 자동차의 통행을 금지하는 대신 시내버스와 자전거의 통행을 허용하고 나머지 도로는 시민에게 돌려주자. 그곳에서 거리 음악회도 하고 각종 전시회도 열면서 거리 축제도 벌려 보자. 금남로에서도 한가롭게 누워 있는 사람을 구경하는 행복(?)도 누릴 수 있다.

도시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관점을 키워 보자. 교통만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는 것도 한번쯤 생각해 보자. 그것이 혹시 도그마로 변질되지는 않았는지 한번 돌이켜 보자. 그러면 도시를 보는 새로운 눈이 생긴다. 문화와 예술이 있고, 삶의 향기가 있고, 멋과 맛이 있는 도시가 눈앞에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꿈이 아니고 현실이 된다. 그러면서 교통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린다. 모두 걸어서, 자전거타고,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금남로에 모여 든다.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그리고 그곳에 인생이 있고 행복이 있다. 얼마쯤 자고 나면 도심공동화문제는 저 멀리 가 있다. 이미 도심은 살아 움직이고 있으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