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단상-노영필]정말 신나는 소풍은 없을까
[학교단상-노영필]정말 신나는 소풍은 없을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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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필[광주 운남중 교사]
"언니는 왜 나랑 같은 데로 안가?"
"너랑 나랑 배우는 것이 다르니까 그러지. 언니는 요즘 책에서 화석이랑 갯벌에서 사는 생물에 대해 배우거든. 너는 봄에 피는 꽃에 대해 배우잖아. 그래서 서로 다른 데로 가는 거야."

며칠 전 초등학교 1학년과 5학년 딸들이 나누던 대화다.
중고등학교의 실망스런 소풍과는 달리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내용이 아닌가. 각기 학년마다 다른 장소로 소풍을 떠난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가 다닌 학교는 도회지 학교 중에서도 한 학년이 서너 학급인 작은 학교에 속한다. 그래서인지 도시의 유원지에 아이들을 가두어두고 시간을 때우는 식은 아닌 것 같다.

소규모단위로 멀리 바닷가로 나가 갯벌체험을 하거나 가까운 산과 들로 나간다니 말이다. 그렇다. 조금만 신경 쓰면 멋진 소풍이 된다. 그런데 왜 중고등학교만 올라가면 아이들이나 교사들이 소풍에 대한 흥미를 잃고 마는 것일까?

학기초 바쁜 업무에 잠시 눈을 떼고 봄 들녘에 밀려오는 초록의 싱그러운 물결을 접할 수 있는 것이 교사들이 기대하는 소풍이다. 아이들은 새로 만난 친구들과 책상머리를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마냥 신나고 즐거운 일이다. 거기다 용돈을 톡톡히 얻을 수 있고 어른들 눈을 피해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기에 더욱더 신나는 날이다.

그런데 왜 중고등학교 소풍은 싱거운 것일까? 우선 소풍을 가볼 만한 곳이 없다고 푸념한다. 사실 가볼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교사들 입장에서 관리와 통제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갈 수 있는 장소가 한정될 뿐이다. 갈 곳은 도처에 널려 있다. 소풍장소는 단위를 작게 움직일수록 선택의 폭은 넓어진다. 전체가 함께 가야 한다는 기존의 편의주의적 강박관념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 학급별 또는 주제별 소풍이다.

아직도 학교에는 전체주의적인 통솔이 중요한 교육방식으로 건재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한 학년이 3∼400명이건 몇 천명이 넘건 꼭 함께 가야 교육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도 의욕이 없는 교사가 하루 종일 아이들을 감당하기에는 버겁다는 무기력에서 오는 역설이 아닐까. 이런 교사들일수록 점심시간 밥상에 신경을 더 쓴다. 아이들이 신바람 나는 일은 어른들이 조금만 힘을 들일 때 가능할 텐데 말이다.

또 아이들과 놀만한 놀이가 없다는 말은 위선이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에게 소꿉장난 같은 놀이는 시시한 것일까? 정말 신나는 놀이가 없는 것일까? 어른들의 추억처럼 아이들의 머릿속에는 김밥 메고 달걀 삶아 낭만적으로 떠나는 소풍이 자리하고 있지 않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디아블로나 리니지의 칼날이 춤춘다.

아이들의 변화는 어른들이 감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그래서 교사들도 아이들이 즐겨하는 머드게임만큼이나 변해야 한다. 전교조광주지부 참교육실천위원회의 "둥글게둥글게"놀이분과는 몇 가지 성공사례를 만들어 냈다. 컴퓨터 게임처럼 반을 두 패로 나누어 일정한 목표까지 도착하게 하는 추적놀이가 그것이다.

이제, 아이들에겐 교정을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함께 잠재된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아이들이 어서 종례를 받고 끼리끼리 흩어지길 고대하는 곤혹스런 시간이 아니라 학교생활의 활력이 되는 소풍을 만들기 위해선 학교의 일상문화도 바꾸고 소풍문화도 바꾸어야 한다.

학교에서 노력하지 않는 교사가 소풍 때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점심도시락에 급급한 그간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변화된 아이들의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소풍날을 체험학습이라는 허울을 명분으로 쉬려했던 무기력을 솔직히 고백하면서 말이다. 교사들의 작은 고해성사가 아이들을 구한다. 그리고 별 사고 없이 큰 학사일정 하나 치룬 것에 불과하다는 관리자들의 생각도 고쳐야 한다.

언제나 소풍은 아름다워야 한다. 팍팍한 아스팔트 위의 도회지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으로 나들이 나간다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설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유원지인 소풍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북새통인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무슨 교육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이왕 있는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부모들과 머리를 맞대고 장소를 고민하고 프로그램을 짜면 훌륭한 내용이 나오지 않을까? 소풍을 지역의 문화행사로 확대해서 생각하는 생각의 전환을 해보는 용기를 갖자.

올 가을에는 아이들이 가고 싶은 소풍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부터 준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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