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삶이 없는 존재, 학부모
자기 삶이 없는 존재, 학부모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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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는 학교에서 자기 존재가 없다. 자기 아이의 위치에 따라 존재가 규정될 뿐이다. 특히 그것은 초등학교에서 더욱 심하다. 자기 아이가 반장을 하지 않으면 어머니는 반 대표가 될 수 없다. 원래 학부모 임원은 아이가 임원이건 아니건 상관없이 학부모 전체 회의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되어야 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기초적인 원칙이다. 그렇지만 초등학교 학급 학부모 회의에서 그런 상식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첫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는 어머니는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높다. 하지만 담임 선생님이 주도하는 학급 학부모 모임에서 반장인 아이들의 어머니가 자동으로 임원을 맡는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허탈한 심정이 되어 집에 돌아오고 만다. 그 다음부터는 학교에 가기도 싫어진다. 이것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관행적으로 취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물론 처음에는 학부모 임원은 회의에서 민주적으로 선출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학부모들이 서로 임원을 맡지 않으려고 양보하거나 거절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교사들은 반장을 맡은 아이의 부모에게 의무적으로 임원을 맡기게된다. 그렇게 해서 생긴 관행일 것이다.

초등학교 학부모 임원은 할 일이 많다. 먼저 회비를 걷어야 한다. 그래서 상견례라는 이름으로 선생님들을 모시고 고급식당에서 식사를 대접해야 한다. 소풍을 갈 때 담임 선생님 도시락도 준비해야 한다. 예전에는 학부모들이 직접 음식을 장만했는데 요즘에는 1인분에 몇 만원 혹은 십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의 도시락을 주문하여 가지고 간다. 그것 뿐 만이 아니다. 학부모 임원을 맡으면 자잘한 것부터 시작해서 아주 비싼 것까지 비품을 기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적게는 교실의 화분부터 시작해서 시계, 생수기, 청소용구 심지어는 강당에서 쓸 의자, 에어컨이나 커텐, 영사막, 방송시설 등 한 개에 수백만원이 되는 것도 있다.

우리 국민들은 교육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유난히 높다. 일제 식민지나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을 때 배는 곯아도 교육은 멈출 수 없다고 하여 땅이나 곡식까지 내놓아 학교를 세우면서 아이들 교육을 시켜왔다. 그때는 정부와 국민 모두가 가난하였다. 정부는 학교랍시고 빨간 황토 운동장에 교실 건물만 몇 채 지어놓고 집기 비품은 학부모나 지역주민들이 돈을 걷어 충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육성회니 기성회니 그런 단체가 생겼고 그때는 그것이 교육입국의 애국적 행위였다. 학부모회도 그렇게 동원되어 학교의 자잘한 경비를 부담해왔다.

현재 우리나라는 중진국의 문턱을 뛰어넘어 고소득 선진국으로 향해 나아가고 있다. 저소득 국가에서 보면 엄청난 부자나라이다. 그것은 초등학교 교실에 들어가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교실마다 있는 실물화상기에 대형 화면의 멀티비젼, 그리고 급식시설, 컴퓨터실, 과학실 등 고가의 첨단 기자재가 비치되어있다. 이제 우리 정부는 넘칠 만큼 풍족하지는 않지만 구차할 만큼 가난하지도 않다. 더구나 교육예산은 그중 20프로에 육박하고 있다. 예전에는 일부 학교에만 있었던 강당이나 급식실이 모든 학교에 지어지고 있으며 학교비품은 물론이고 학급비품 구입 등 자잘한 경비는 물론이고 운영위원 업무 추진비 심지어는 학부모회 운영비까지도 예산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차츰 제도화되고 있다.

그런 마당에 학교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아직도 학부모들의 호주머니를 울리게 만드는 학부모회는 시대착오적이다. 이제 아이들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건전한 학부모회가 구성될 수 있도록 교육당국과 교사, 학부모가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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