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에 물든 비엔날레에 남도의 봄이 머물고 있다
색에 물든 비엔날레에 남도의 봄이 머물고 있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4.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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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80년대 중반 대학시절 제주도 실습여행을 갔을 때 저녁시간을 이용하여 나이트 클럽을 가고자 하는 학생들을 대표하여 꽤 듬직한 호텔에 들어섰다가 이내 거리에 내 몰리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입고 있던 옷이 츄리닝이란 이유 때문이었다. 머물고 있던 숙소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기에는 시간과 거리가 있어 그 나이트 클럽을 포기할까 하다가 종업원에게 다시 부탁해 보니 뒷문으로 들어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 말대로 들어가 계약을 마치고 마침내 내 친구들이 즐겁고 신나게 뛰어 노는 모습을 보며, 나는 쓸쓸히 숙소로 돌아왔었고 그 기억은 더 나이 먹어 학생들을 인솔하고 제주로 출장간 지금까지 생생하다.

크고 낯선 것들에 대한 두려움과 그것에 대해 자꾸 무력해지는 나라는 존재는 지금도 변함 없나 보아 씁쓸했다.
하지만 꼭 내 성격이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제주도의 나이트클럽보다 더 거대하게 내게 다가왔던 것이 '95년부터 열리기 시작한 비엔날레였다. 그 생경한 단어부터 시작하여 거기에 소요되는 비용과 인력과 홍보와 기간과 내용과 이를 둘러싼 싸움들이 너무나 엄청나서 나는 감히 그곳에 가지 못했었다.

그런 나의 발걸음을 막았던 비엔날레의 구조는 차츰 다른 도시의 축제를 다녀 보면서 별 것 아닌것으로 인지되기 시작했고, 드디어 2000년 3회 광주비엔날레에 당당하게 입장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관람객의 입장이 아닌 비엔날레의 관광전문 위원이 되어서였다.

3회 비엔날레가 진행되는 동안 70여일의 기간을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을 했다. 관람객의 숫자에 일희일비하면서도 이게 아닌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장 중요한 것은 미술문화 수용자의 확대와 질 높은 관람객들의 유치와 향유자 중심의 문화가 꽃피웠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2년 제 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나는 일용직 노동자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출근을 하고 있다. 이번에도 관광분야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문화사업팀에 배속되어 업무를 수행하며, 학교와 중외공원 사이를 오고 가면서 나는 봄날이 가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중외공원 밖에서 열리는 비엔날레 프로젝트 3과 4를 찾아가다 보니 매화와 벚꽃이 보이지 않고 그저 바닥에 쓸쓸히 날리는 꽃잎을 보며 이 봄이 가는 것을 느꼈을 뿐이다.

그 어느 때 보다 봄 여행을 다녀와 글을 쓰고 싶었던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른여섯의 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4월 4일 서울의 한 여행사에서 이곳 저곳에 핀 꽃을 찾아가는 여행객들이 차량 40대를 채웠다는 환호와 함께 광주비엔날레 탐방에 모집된 여행객은 고작 열명도 안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다음날 광주 중외공원의 주차장에 놓여있는 500여대의 차량속에서 300대 가량이 광주 이외의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서 억울했던 마음이 가심을 느꼈다.

그리고 관광안내센터에서 관람을 마친 그들에게 보였던 환한 미소와 암호와 같던 미술을 이제야 쉽게 만났다는 얘길 들으면서 한 가닥 희망을 느꼈다.

하지만 짚신과 나막신을 파는 두 아들을 둔 어머니처럼 내 고장에서 열리는 미술행사에 내 고장 사람들의 얼굴이 더 드물어 보이는 것에 대한 조바심 또한 버릴 길 없어 이렇게 얘기한다.

사람들아! 비엔날레에는 우리가 여직껏 꿈꿔보지 못한 광주의 미래가 들어있고, 우리가 더듬어 보지 못했던 전통의 숨결이 있고, 아직도 가시지 못하는 광주의 봄이 색색이 남아있다. 어느 나이트 클럽처럼 평상복을 입고 있다고 뒷문으로 들어오라고 눈알 부라리는 이 없고 문턱이 높아 힘겨워 해야 하는 곳 없이 그저 마실가듯 편안하게 내 방식대로 세상을 읽을 자유만이 보장되는 그런 공간이 93일간 지구의 변방 광주에서 빛나고 있다.
부디 다녀가기 바란다. 나 저문 봄 길 위에서 희망을 캐서 여러분에게 보내고 싶으니 말이다.

2002년 4월 어느날 광주비엔날레 관람·관광안내센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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