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교장이 필요하다
민주적 교장이 필요하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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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단상>


지난 겨울 방학 동안 산림청이 주최한 <산림생태 환경 교원연수>에 다녀온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솔직히 적잖은 연수비를 부담하면서 이곳 광주에서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국립수목원까지 3박 4일을 투자한 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을 요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동안 내가 받았던 그 어떤 연수보다도 유익한 연수였다. 나를 포함한 많은 연수생들을 감동시킨 건 연수원의 쾌적한 시설이나 강사들의 빼어난 강의 때문만은 아니었다. 우릴 감동시키건 산림청 공무원들의 헌신과 봉사였다. 그리고 공무원들의 이런 태도를 이끌어 낸 시스템과 의사결정 과정의 투명성이 부러웠다. 또한 3박 4일 동안 묵을 연수생을 위해 욕실에 비치한 빨래 비누 한 장에서부터 방마다 놓여있던 빨래걸이까지 아내의 손길만큼이나 꼼꼼하고도 섬세하게 연수생들을 맞는 그들의 마음이었다.

공무원도 변해가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는 연수였다. 연수 말미에 연수원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답변이 너무 신선했다. "작년까지는 우리 연수원의 구호가 고객 감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금년 들어 연수원 구호가 고객 기절로 바뀌었습니다".

변치 않는 학교 풍경


연수를 받는 내내 난 요지부동의 학교를 생각했다. 근대 교육이 시작된 이래 거의 100년 동안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바뀌고 교육제도가 수도 없이 바뀌었음에도 조금도 변치 않고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벌어지는 교무실 풍경이다. 교무부장으로부터 시작해서 연구부장 학생부장을 거쳐 행정실장과 교감 교장 순서로 일사천리로 이어지는 지시 전달 사항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교무수첩에 받아쓰는 절대 다수의 성실한(?) 교사들의 무기력한 모습. 이것이 21세기의 한국 교육의 현주소이며 한국 교사들의 민주주의 수준이다.

도대체 <교무회의>가 무엇인가? <교무>란 수업에 관한 학교 업무 전반을 일컬음이고 <회의>란 모여서 의논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한국의 학교에는 <교무>만 있고 <회의>는 없다. 그냥 지시전달만 있을 뿐. 토론과 토의의 문화가 아예 없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성실한 교사인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화는 그대로 학교 문화 전반으로 이어지며 학생에게 그대로 확대 재생산되는 그런 구조를 띠게 된다.

민주주의란 훈련의 소산


학교의 민주주의 수준이 이 정도이고 교사의 민주주의 수준이 이 정도이니 그런 학교에서 훈련된 우리 아이들의 민주주의란 정말 허약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장차 자라 꾸려갈 우리 사회의 미래는 그야말로 암담하고 암담할 뿐이다.

학생들이 학교에서 정작 배워야 할 것은 사회 교과서에서 배우는 관념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란 관념이 아니다. 민주주의란 삶이고 생활이며 훈련인 것이다. 학교를 통해 길러진 민주시민의 소양이 그대로 미래 한국 사회의 토대로 이어지는 것이다. 세계 최저의 문맹률과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지만 정작 한국 사회의 시민의식과 민주적 역량은 부끄럽고 부끄러울 뿐이다.

지난 겨울 광주사회조사 연구소가 주최하는 교육워크숍에서 만난 NGO 활동가의 말이다. "광주시 교육청이 각급 학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장학협의회에 NGO 대표로 참가한 적이 있다"면서 결국 학교 사회의 경직성과 관료성이 결국 학교 현장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주 요인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마디로 학교에는 <왜?>가 통하지 않는 관료조직이다. 그곳엔 이유가 없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면 편하고 좋은 것이다.

다행히 이제 학교 밖에서는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과 제왕적 야당 총재 제왕적 기업오너 등으로 대변되는 제왕적 문화가 서서히 붕괴되고 있다. 그 동안 한국 사회의 업그레이드를 가로막은 가장 걸림돌이었던 이런 문화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민주당의 국민 경선 제도 결국 이런 변화의 시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학교도 이제는 변해야 한다.


이제 교사가 깨어나야 한다. 그리고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토론문화가 살아나야 한다. 학생에게도 교사에게도 학교가 민주주의 훈련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일사불란한 명령과 지시로는 타성에 젖은 학교를 되살릴 수 없다. 학생과 교사 그리고 교장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진정한 학교의 주인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제왕적 교장의 모습도 마땅히 바뀌어야 한다. 21세기의 한국 교육을 책임질 수 있는 새로운 교장 상은 제왕형 교장이 아닌 CEO형 교장이어야 한다.

근대 교육 100년사에 <학교 민주화>라는 담론은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이며 위기에 처한 한국 교육의 돌파구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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