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역꾸역 끼어드는 老慾에 그저 역겨움이...
꾸역꾸역 끼어드는 老慾에 그저 역겨움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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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조와 품위의 문화>


요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첫 번째 화제는 단연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일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정치얘기 좋아하는 우리 국민들의 특성에도 있겠지만, 처음 시도되는 국민 경선제가 그 동안 '정치다운 정치'에 목마른 일반 국민에게 모처럼 갈증을 해소해주는 신선한 청량제 구실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텔레비젼 토론의 높은 시청률은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

그러나 옥에 티라 할까, 지난 광주 경선을 위한 텔레비젼 토론을 지켜보면서 내심 불쾌감과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것은 토론장의 후보들 때문이 아니라 그날 사회를 본 모대학 총장 때문이었다. 한 정당의 후보자 토론 사회를 대학의 총장이 맡는 것이 운동화신고 갈 곳을 갓끈 메고 간 것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어떤 영문인지 모르지만, 진리에 헌신하는 대학의 상징적 인물이 현실정치에 끼어 들어 왈가왈부하는 것은 많은 동료 교수들의 얼굴에 뜨거운 물을 끼얹는 것 같은 품위와 격조를 잃어버린 처사였다.

비단 그 뿐 아니다. 광주 지역 사회를 조금만 들어다 보면 영상축제니 비엔날레니하는 문화 행사의 단체장은 모두 연로한 명망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은퇴하여 한적한 곳에서 여가를 즐기거나 인생을 관조하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어울리실 분들이다. 전문가적인 식견도 없이 꾸역꾸역 끼어 들어 명함을 내놓는 딜레탕트의 노욕에 그저 역겨움이 느껴질 뿐이다.

물론,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길어져 70이 되어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분들도 많고, 젊음과 늙음을 일률적으로 단순하게 생물학적인 나이로 재단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오늘날 수십만 청년 실업자를 보면서 우리사회가 빠른 세대 교체로 신진대사가 좀더 활발해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물이 고여 흐르지 못하는 사해에는 생물이 살수 없듯 자라나는 후진들의 길을 막고 있는 사회는 정체되어 부패되기 마련이다.

몇 년 전에 동경대학 교수들이 정년을 60년에서 62년으로 늘리려는 일본 정부의 방침에, 새로운 후배들에게 빨리 자리를 양보하여 학문의 활성화에 기여하기 위해 반대한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동경대 교수들의 고매한 인격에 고개가 숙여졌다. 일본은 세계에서 평균수명이 가장 긴 나라이고 더욱이 동경대학은 세계가 인정하는 명문대학이다.

그러나 우리주변에는 30년 이상 국가의 녹을 먹고 은퇴한 노 교수도, 많은 젊은 학자들이 한 강좌를 얻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며 대학을 쫓아다니는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만 열중이다. 또한 그 많은 학생들이 피 흘리며 꽃잎처럼 스러져간 혹독한 군사 독재시절에도 잘도 버텨 높은 지위에 오른 명망으로 정년 후에도 재능 있는 싱싱한 젊은이들을 뭉개버리고 자신의 이름을 내기 좋아하는 그런 분들이 너무도 많다. 이를 보면 동남아 관광여행가서 뱀 잡아먹는 보신주의자의 그 끈질긴 정력과 기름기 흐르는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욕심덩어리를 보는 것 같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기품있고 우아하게 늙어 가는 아름다운 분들도 주위에 많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무엇보다 품위와 격조를 유지할 때 드러난다. 어른으로 인정받고 싶을수록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 경계하며 나설 때와 물러설 곳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한다. 나이 들어 분별지를 유지한다는 것은 절제와 한계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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