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판을 깨려고 하느냐?
광주의 판을 깨려고 하느냐?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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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섭(호남대 교수)

일전에 필자는 광주 YMCA 사무총장의 '시민의 소리'(3월 11일) 신문 인터뷰 내용을 보고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비판했다. 거기에는 먼저 필자 개인의 어떠한 사감도 없으며 또한 사무총장직을 탐내고 있다는 항간의 음해성 소문에 대해서도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먼저 밝혀두고자 한다.

도덕성을 생명으로 해야할 시민단체 대표가 1백여명의 총회원들 앞에서 그것도 정기총회에서 했던 말을 신문 인터뷰에서 정반대로 말바꾸기 했기 때문에 비판한 것이었다. 이것은 총회원들에 대한 모독이며 기만이었다. 그 거짓 증언 앞에 필자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으며, 자존심을 짓밟아 버리는 말로 다가왔다.

시민단체의 보다 성숙한 발전을 위하여 필자는 광주 Y- 홈페이지에 '帝王的인 시민단체 대표에게 드리는 苦言'이라는 글과 '시민의 소리'(3월 18일 참조)에 연속 두 개의 글을 올린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필자는 모두 실명으로 글을 올렸다. 꽤 많은 반응이 나왔다. 사실 여부를 떠나 미쳐 알지 못했던 이야기까지도 필자에게 들려왔다. 그러나 사실과 진실을 떠난 이야기들은 모두 흘려보냈다. 몇 사람들이 필자의 글을 보고 응원해주어 고맙기도 했다. 혹자는 감히 어떻게 그렇게 직설적으로 비판할 수 있냐고 의아한 표정이었다.

이러한 과정속에서 필자는 미쳐 경험하지 못했던 시민단체의 권력화 문제를 피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시민단체가 '시민대중'이라는 이름하에 기득권을 가진 권력기관화 되었다는 사실이 필자를 슬프게 했다. 회원들이나 시민들이 자기들이 만든 시민단체를 비판하거나 문제점을 함부로 말하기도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도 잘못하면 비판받고 내쫓겨나는 세상이다. 어떠한 권력기관이라도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시민권(Civil right)이 오히려 시민단체 속에서 위축되었다는 사실. 정말 놀랍고 아이로니컬한 일이며 부아가 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침탈과 압제, 피해의식 속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의 어둡고 부정적인 문제까지도 반추되었다. 근래 우리 현대사만 보더라도 해방직후 암살과 투옥 뒤이어 6.25동족상잔의 내전과 비극적인 가난, 미국의 원조문화와 권위주의정권, 30년 가까운 군사독재 아래서 제대로 어깨 한번 펴보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 민족의 수난사. 이러한 역사는 우리들의 노예근성과 속물근성만을 키워왔으며 정의감이나 공동체의식을 마멸시켰다. 이들 노예근성과 속물근성은 더러운 아첨과 맹목적 충성, 기회주의를 바닥에 깔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글이 나간 며칠 뒤 놀랍게도 평소 가깝게 지냈던 한 친구가 찾아왔다. 그 친구는 광주 Y- 사무총장과도 가깝게 지낸 관계였다. 다짜고짜 필자를 만나자마자 왜 사무총장을 그렇게 비판하느냐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 내용을 요약하면 "왜 광주의 판을 깰려고 하느냐?" "왜 주류권을 벗어 날려고 하느냐?" "혹시 네가 사무총장을 할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는 등 참으로 한심한 얘기들이었다. 대꾸할 가치도 없었다. 필자는 그 친구에게 했던 말 한마디만 기억하고 있다. "어, 친구, 세상을 主流 對 非主流라는 기회주의적 발상으로 파악하지 말고, 옳고(正) 그르냐(邪)로 파악해서 처신하라"고.

몇 년간 닦아온 '광주의 판'을 깨지 말자는 몇 사람들의 귓속말 소근거림이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딱딱하게 굳은 판은 깨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없다. 도대체 '광주의 판'은 무엇이고, 주류 혹은 비주류는 무엇인가? 변칙과 거짓말, 대형사고로 시민단체를 이끌어 오는 것이 '광주의 판'인가. 소수 몇 사람들의 의도된 계획과 설계가 '광주의 판'이라는 말인가.

자신들만이 주류이고 여타의 사람들은 모두 비주류라는 말인가. 이러한 독선과 아집으로 오늘날과 같은 투명하고 다양한 민주시민사회를 결코 이끌어 갈 수 없다. 치기어린 영웅심에 동정하고 싶다. 가끔 터무니 없는 비방과 음해성 소문이 들려온다. 분명 그러한 비방과 소문들은 필자의 비판을 희석시키기 위한 모함이다.

비방과 모함, 억측이 난무하는 사회는 건전하지 못하다. 귓속말이나 얼굴없는 소문들이 무성한 것도 불행한 사회다. 건전하지 못하고 불행한 사회에서는 원칙보다는 변칙이 지배한다. 변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기생하는 사람들이 판을 친다. 이들은 투명하거나 개방적이지 못하고 폐쇄적이며 음험하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끼리끼리 판을 만들기 좋아한다.

소위 '광주의 판'을 깨지 말자는 것도 결국 자기들 끼리만의 판을 지키자는 것이다. 이것은 대명천지에서 깨부숴져야 할 마땅한 치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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