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돌아갈 수 없는 유년의 추억(?)
고향, 돌아갈 수 없는 유년의 추억(?)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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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돌아와 해를 두 번 넘기니 이제 조금 알것 같다. 고향은 돌아갈 수 없는 오래된 유년의 추억일 뿐이라는 거. 그리하여 우리시대 고향은 여러가지 말과 물질로 치장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더욱더 허기지는 저주받은 공간이라는 것.

그런데 자본주의 일상이 전면화되기 이전의 마을공동체의 삶과 문화가 속 깊은 원형질을 이루던 내 살던 고향은 혹시 비자본주의적 삶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어찌 되었던지 이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고향이란 지역은 폭력적으로 해체되었다.(그 폭력은 국가/자본의 제도적 폭력과 상품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지역사람들의 내적 폭력이 어설프게 결합한 형태일텐데) 논과 밭, 산과 들로 둘러싸인 지역에는 누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 분명하게 말하면 몇몇 지역권력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심각한 열등감과 결핍감으로 상처투성이인 사람들이 살고있다.(그런데 우습게도 글쓴이를 포함해서 가진 것도 권력도 없는 치들이 이 어려운 시절을 신명난 전략으로 돌파하려는 작당을 벌이고 있으니 이 쪽 저 쪽에서 미친놈들 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논과 밭, 산과 들로
둘러싸인 지역엔 누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한 편 지역인들은 대도시의 익명성 속에서는 감출 수 있는 일상의 감정과 육체의 불만을 직접적인 육성의 장 속에서 노출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다르게 생각하면 지역은 가난하고 소외된 곳(이건 순전히 도시적 삶의 기준일 뿐이다)이 아니라 차라리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가 직접적이고 풍부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이 전면적으로 열리는 공간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지역인들의 일상적인 삶과 그 삶의 슬프고도 신명난 표현이 모두 지역문화일 것이다.그런데 소멸과 지배와 생성이 여러 갈래로 얽히어 힘 겨루기를 하는 지역문화 속에서 이 모든 문화적 흐름과 연루되어 다양한 힘을 발휘하는 문화가 있으니 바로 전통이다. 전통은 우선 그 생명이 다해 자연스럽게 그러나 폭력적으로 소멸하는 문화이자 자본에 갑자기 호출당해 꽃단장하여 돈벌이가 되기도 하며 자립적 삶을 지향하는 소수자의 문화로 다시 부활하기도 한다.

분명한 건 대부분 심각한 결핍감으로
상처투성이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댐 건설로 인해 폭력적으로 수장되는 내 사는 지역의 전통을 자립과 자치의 대안적 삶과 문화로 재구성하려는 지역모임의 탐진강 기획에 관해 밝혀본다. 탐진강 프로젝트는 고물 전시 마당이다. 고물은 옛날 물건이고 낡고 헌 물건이다. 또한 고물은 오래된 물건이나 사람을 비하하여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 우리는 탐진댐으로 전혀 쓸모없게 되어 고물 취급당하는 물건을 모아 전시할 것이다. 이제 영영 수장될 고샅길과 돌담과 흙집이 있는 마을 전체가 작품이다.

평생의 고된 노동으로 늙고 병들어 쫓겨나는 고물 노인네들이 엮은 멍석을 깔고 앉아 그네들이 빚은 술과 떡을 먹으며 한 판 슬픈 진혼굿판을 펼칠 것이다. 젊은이들이 작업하는 영상과 사진과 그림과 목각도 모두 고물을 담은 작품이 될 것이며 고물을 변주한 작품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고물 속의 전통기술과 삶의 문화가 새롭게 비자본주의적 일상을 조직하는 욕망으로 전화되는 장마당을 펼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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