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거리로 내몰린 이유는…
그가 거리로 내몰린 이유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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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노동자'하면 붉은 머리띠를 이마에 묶고 과격한 투쟁의 소리를 외치는 모습을 연상한다. '노동자=과격'으로 등식화된 데에는 실재 노동자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도권 언론이 분칠해온 편파 보도 때문이기도 하다. 투쟁이 좋아, 투쟁에 나서는 사람은 없다. 왜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가, 누가 불의한 억압을 먼저 가하였는지, 늘 제도권 언론은 입을 다문다.

1인시위 벌이는 오승재씨


여기 오승재라는 이름의 노동자가 있다. 누구든 만나 보면, 세상에 이렇게 선량한 사람이 또 있을까. 나이는 서른 셋. 이제 네 살 짜리와 여섯 살 짜리의 두 아이를 두고 있는 평범한 가장. 고향은 해남이요, 고등학교를 이곳 광주에서 나오고, 군대를 갔다온 후 94년에 첫 공장의 문을 넘었다.

지금은 해고자. 작년 5월 <대유 에이텍>에서 해고되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해고의 부당성을 따지고 있는 중. 한 사람이 회사의 정문 앞에서 매일 1인 시위를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왜 매일 회사의 정문 앞에서 목놓아 외칠 수밖에 없었던가. 우리는 오씨를 통해 대한민국의 지극히 사소한 한 사건을 만난다. 하지만 이것이 대한민국의 진실인지도 모른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불행의 씨앗은 (주) 성신정밀의 사기대출사건에서 비롯됐다. 당시 사장은 산업은행 총재의 명의를 도용하여 은행으로부터 2700억원을 사기대출을 받은 것. 이때문에 성실하게 일만 해온 오씨에게 불행의 먹구름이 몰려왔다. 98년 6월 회사가 최종 부도처리가 된 뒤 오씨와 그의 동료들은 회사를 살리기 위해 '비상대책위'를 구성하고 공장을 정상적으로 가동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주) 성신정밀을 <대유 에이텍>이 인수한 것은 2001년 1월. 오씨와 그의 동료들은 2년 반 동안 제대로 임금조차 받지 못하면서 회사를 살려 놓았는데, <대유 에이텍>은 이들 비밀리에 직장 조장 3인으로 노동조합을 구성토록 한 후 한국노총에 신고해버렸다. 5년 동안 성실하게 일해온 오씨와 그의 동료들의 노동조합을 부정해 버린 것이다. 누가 오씨로 하여금 고달픈 투쟁의 길, 노동자의 길로 나서게 하였는지는 자명하지 않는가?

대유 에이텍의 근로조건을 살펴 보자. 대유 에이텍은 기아자동차 하청기업으로서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자동차 시트를 생산하여 전량 기아자동차에 납품하는 이 회사의 정규직 노동자는 57명, 월 평균 임금 수준은 80만원. 연봉 1천만원이 되지 않는다. 정규직 노동자는 그래도 낳은 편이다. 120명의 용역 노동자들의 월 평균 임금 수준은 60만원. 용역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하루살이 인생이다. 내일 해고될 지, 모레 해고될지, 언젠가 오게 되어 있는 해고의 날만 기다리며 살아가는 인생이다.

박영우 사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초 조카의 사위로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일한 연분으로 정몽준을 사귀게 되었고, 기아자동차 시트 납품권을 따게 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열악한 근로조건도 문제지만,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고정직하게 살아온 노동자를 해고시킨 사태의 결론이 어떻게 끝날지 주목된다.
윤정근기자는 민주노동당 광주시지부 사무처장을 맡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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