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운위 선거열기 ‘활활’ 후보도 ‘깜짝’
학운위 선거열기 ‘활활’ 후보도 ‘깜짝’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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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광주지역 학교운영위원회 선거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열기에 휩싸이면서 가능성과 문제점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경선과 지방자치 선거의 그늘에 가려 세간의 관심은 그다지 끌지 못하고 있지만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올해 학교운영위원 선거가 단연 최고의 이야기거리가 됐다.

학부모들 어느 해보다 관심 고조
제대로 된 학교운영위원 상 정립
언론 등 사회적 관심 유도
내사람 심기, 투표방식 등 문제점도 노출


교육감선거와 교육위원 선거가 끼어있어 학운위원 선거가 어느 때보다도 교육계 내부에서 관심거리가 될 것이라고 예상은 됐었지만 기대치 이상의 열기가 나타나고 있다.

화정남초등학교 선거현장

지난 19일 열린 광주 화정남초등학교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을 뽑는 선거에서 그 결정판을 보여줬다.
7명의 위원을 선출한 이번 선거에 무려 21명의 학부모가 입후보해 경쟁률만 해도 3대 1까지 치솟는 등 지난 95년 학운위 제도가 도입된 이래 좀체 보기 힘들었던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
이 학교는 지난해 운영위원을 하려는 학부모가 별로 없어 정원을 채워 학운위를 구성하는데도 상당한 애로를 겪은 것으로 알려져 올해 선거가 더욱 이채롭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경쟁률 뿐만이 아니었다.
300여명의 학부모가 모인 가운데 학교 강당에서 치러진 이날 선거에서 너무 많은 입후보자 때문에 단 1분씩으로 제한된 유세에서 각 후보들은 촌각을 아끼며 주장을 펼치는 모습이 사뭇 제도 정치권 선거의 치열함을 닮아 있었다.
지난해 이 학교 학운위원장을 맡았던 최희동 후보는 "학운위 선거에 대한 열띤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면서 "교육자치를 이루는데 앞장서겠다"며 포부를 밝혀 당선됐다.
광주 참교육 학부모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순미 후보는 "회의 때 당당하게 참석해 학교현안들을 논의하겠다"며 "민주적인 사람이 위원이 되어야 하며 또 그렇게 하겠다고 당당히 약속드린다"고 주장, 학부모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1분 유세시간을 넘기면 마이크가 꺼지는 바람에 육성으로 한표를 호소하는 모습도 보이는가 하면 학교 방송반 어린이들이 투표과정의 부정행위를 감시하기 위해 연신 비디오 촬영에 열중하는 모습이 웬만한 구의원 선거는 저리가라할 정도였다.
지난해 대부분 학부모위원들이 주부들로 구성됐던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입후보자들의 다양성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사업자로부터 교육계 종사자, 공무원, 교수, 노동자 등 여러분야에 종사하는 학부모들이 입후보했고 극단적인 여초현상을 보이던 예년과 달리 남성과 여성이 각각 절반정도 된 것도 특기할 사항이다.
투표권을 가진 학부모들은 후보들의 유세를 들으며 공감이 가는 후보에게 열띤 박수로 호응하는가 하면 취재중인 기자들을 보고 "학운위 선거에 기자들이 이렇게 몰리는 것도 처음이다"며 선거를 '즐기는'모습이었다.
선거를 지켜보던 이 학교 방송반 김하나(6학년)양은 "엄마 아빠들이 용감하게 자기주장을 펼치는 것이 너무 재밌다"며 비디오카메라의 앵글을 여기저기 돌렸다.

학운위 선거열풍은 단지 이 학교만은 아니다.
거의 모든 학교에서 비슷한 장면들이 나타났다.
교육감 선거와 교육위원 선거의 전초전으로서 이번 학운위원 선거는 과열분위기를 보이면서 여러가지 문제점을 노출시켰다.
여러차례 언급되고 있는 자기사람 심기는 물론이고 선거절차가 명확하지 않는 부분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연기명과 단기명방식 등 투표방식에 대한 규정이 애매해 각급학교에서 혼란을 겪는 과정에서 전교조 광주지부가 교육청에 항의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교장이 당연직 교원위원으로 학운위에 참여하도록 돼 있는 가운데 같은 관리직인 교감들이 대거 교원위원에 출마해 주도권 쟁탈전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타났다.
또 H초등학교의 경우 행정실 직원이 학부모위원으로 출마해 '학운위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학교예산운용에 대한 감시인데 예산운용부서에서 학운위에 진출하는 것은 모순이며 제척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도 터져나왔다.

그렇다고 이번 학운위 선거가 문제점만 잔뜩 노출시켜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지금까지 제기됐던 문제점들은 지난해까지 아무런 소동도 일으키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동안 '불합리하지만 별다른 이의제기가 없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던 절차상 미비점들이 노출돼 여러 규정들이 정비될 토대를 만들고 있다.
무엇보다 학운위에 대한 학부모들의 인식을 크게 바꿀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됐다.
'가끔 한번씩 회의에 참석하고 교사들 대접이나 한다'는 것이 지난해까지 학운위원을 바라보는 학부모들의 시각이었다.
이번 선거에서 후보자들은 '아이들이 밝고 명랑하게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 '민주적인 학교만들기 위해', '학교운영 과정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교육자치의 토양을 만들기 위해', '학운위원이 간판달기나 명예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출마했다는 점들을 강조했다.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거 때문에 올해 학운위원 선거가 이상열기를 띠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열기 자체는 매우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전교조 광주지부 정병표 지부장은 "학교운영위원회의 본 뜻을 살리기 위해 이번 학운위원 선거에 조합원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출마를 적극 권장했다"며 "올해의 열풍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교육자치의 튼튼한 기반이 형성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광주시 교육청 관계자는 "지난해까지 숫자 채우기에 급급했던 학운위원 선거가 올해는 무척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교육계 선거를 앞두고 언론들이 앞다퉈 보도하는 바람에 그런 분위기가 형성된 점도 있다. 내년에도 제발 올해같은 열띠게 보도해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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