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
결혼,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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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시절, 난 결혼같은 걸 해서 나 스스로 무덤을 파는 일은 하지않겠다고 다짐했다.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라면 당연히 안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대학 졸업과 함께 서둘러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고 속으로 안타까워했다. 왜 단 한번뿐인 인생이 우리에게 허락한 수많은 선택사항 중에서 모든 것을 제쳐주고 결혼이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해 스스로 자진 추락하려고 하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그러던 내가 지난해 12월, 서른 한 살에 결혼을 했다. 누가 얼른 시집 가라고 떠민 적도 없고 혼자 살면 안된다고 한 사람도 없었다. 더구나 다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편입까지 준비해 사회인에서 다시 늦깎이 대학생이 됐던 나인데. 아무도 나에게 결혼이라는 걸 강요하지 않았는데 난 스무 살 시절의 그 굳센 다짐들을 다 잊어버리고 자연스럽게 결혼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남들이 흔히 말하는 아줌마가 되었다.

아줌마...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꼬마녀석이라도 "아줌마, 있잖아요..."하면 기겁을 하던 나였다. 물건을 사러 가게에 들어 갔다가도 아줌마라는 소리를 들으면 꼭 사야하는 물건이라도 사지않고 나오던 나였는데 결혼과 동시에 아줌마라는 꼬리표가 자연스럽게 따라 붙은 것이다. 그런데 왜 난 그토록 아줌마라는 소리를 듣기 싫어했던 것일까? 아줌마가 되는 순간, 왜 인생은 모두 끝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왜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겐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던 것일까? '결혼도 안한 나에게 어떻게...' 하는 마음이었을까?

아침마다 일어나 거울 앞에 선 나를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스무 살 시절 생각했던 결혼한 여자의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이 어떤지, 결혼하고 달라진 건 어떤 건지... 그땐 너무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의 여자를 수동적이고 소극적으로 그렸던 건 아닐까? 결혼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꼼짝도 못하는 여자를 내 맘대로 그려놓고는 난 절대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결혼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는 호언장담으로 표현했던 것은 아닐까? 결혼하면 다 아줌마가 되고 아줌마는 시대에 뒤떨어진 구식이라는 등식을 혼자 만들어 놓고 아줌마의 '아'자만 들어도 지레 화부터 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젠 알겠다. 결혼을 하고 아줌마가 됐다고 해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바뀐 것은 아니라는 것을, 결혼은 인생의 또 다른 출발선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 삶의 연장선에 불과하다는 것을... 서른 한 해 동안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부끄러운 아줌마가 아니라 당당하고 멋진 아줌마가 되기 위해 매일매일 자신과의 치열한 한 판 싸움을 해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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