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아이가 된 하늘이
산골아이가 된 하늘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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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다투고 게임하며 놀던 친구와 어쩌면 영영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지 아이는 꾹꾹 참아온 눈물을 기어코 보이고 맙니다. 친구와 작별인사를 나누려 전화를 건 아이는 어찌된 영문인지 예예 만 점점 잦아드는 목소리로 여러 번 되뇌이더니 전화를 끊고는 손등으로 슬쩍 눈물을 훔쳤습니다.

알고보니 속 사정을 짐작한 친구의 어머니가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이런저런 말을 건넨 모양입니다. 1톤 트럭을 운전하기에 서너 번에 걸쳐서 이삿짐을 날랐는데 하필 초등학교 졸업식과 함께 이사를 마무리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는 시골에서 사는 연습을 많이 한 편입니다. 얼추 일 년 동안 휴일이면 한치에 내려와 고무신을 신고 흙길과 자갈길을 다니며 도시의 포장길과는 다르게 걷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했습니다.

아이는 표준적인 일상을 넘나드는 시간과 공간에 관한 색다른 체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해 6학년 학기 중에 한 50일 유럽의 많은 도시들을 다니며 자기가 사는 자리가 아닌 그 바깥에서 자신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학교를 오가는 십 리 길
아이는 날마다 걸으며
가장 많은 공부를 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저하던 아이가 시골생활의 불편과 도시의 유치찬란한 놀이문화에 비해 너무나 단순해서 심심한 산골의 환경을 선뜻 받아들이기로 한 이유는 여전히 수수께끼이긴 합니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댐 수몰로 초중통합학교로 다시 지은 건물은 백 여명 남짓한, 아이들이 몸담기에는 너무나 크고 위압적입니다. 낮고 아기자기한 산들의 부드러운 곡선과는 다르게 너무나 반듯해서 차가운 건물 안과 밖에서 아이는 시종일관 딱딱한 얼굴입니다.

하지만 신입생 일곱 명의 친구와 담임선생님의 얼굴을 만나고 나온 아이는 무언가 설렘을 가진 한결 부드러운 표정이어서 내 마음도 조금은 풀립니다.
이제 아이의 학교는 무한히 확장될 것입니다. 가끔은 엄한 눈빛으로 내리치는 천둥번개에 놀라며 가끔은 너무나 따뜻한 넓은 품으로 껴안는 햇살 아래서 사랑을 느끼며, 자연에 감사하고 자연을 진정으로 두려워할줄 아는 겸손하고 사려깊은 아이로 성장할 것입니다.

자연에 감사하고,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사려깊은 아이로 성장할 것입니다


마을과 집의 식구들, 아재와 아짐들의 가난하지만 넉넉한 나눔의 삶을 배울 것입니다. 아버지와 들에 나가 일하며 대지의 육체와 만나는 법도 배울 것입니다.

아마도 아이는 학교를 오가는 십 리 길을 날마다 걸어 다니며 가장 많은 공부를 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아이는 자고 있습니다. 아이는 지금 무슨 꿈을 꾸는지 자꾸만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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