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눈 의식않는 줏대로 키우자꾸나"
"남들 눈 의식않는 줏대로 키우자꾸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3.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아이를 키운다는 일,그것도 잘 키운다는 일에 대해 고민하던 이즈음 원고를 부탁하는 너의 전화를 받았다.다른 때 같았으면 "애들이야 저 스스로 크는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겼겠지만 새로 어린이집을 선택하고 그 곳에 아이를 적응시켜야 하는 학부모인 나는 여러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했거든.
어떤 곳이 좋을까.위치부터 시작해서 선생님들의 성향,주변 환경,교육 과정, 다니는 어린이들의 면면까지 이왕이면 더 좋은 곳에 보내고 싶어하는 게 모든 엄마들의 마음일 테니까.

오늘 방문한 어린이집은 높은 아파트들 뒷 편에 낮게 자리잡은,마당이 있는 어린이집이었어.마당 한쪽으로는 닭장이 보이고 복숭아 나무며 키 큰 살구 나무도 여러 그루더구나.
인공으로 실어다 놓은 네모난 놀이터의 모래가 아닌 흙으로 된 마당은 참 정겹더라. 그 곳에서 흙장난이며,달걀 낳는 것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 볼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슬며시 웃음도 났지.그 곳은 엄마들이 꽤 좋아하는 곳으로 알려진 모양이던데 그러고보면 이런 시골스런(?) 장소를 더 교육적이라고 생각하는 엄마들도 참 많아졌어.

어찌보면 풍요롭게 자란 첫 세대로서의 젊은 엄마들은 스스로 모든 것을 터득해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환경에 놓인 듯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엄마들처럼,그냥 낳아 놓으면 제 알아서 커가는 세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느 누구에게 이 빠른 세상에 적합한 올바른 교육법을 배운 것도 아니거든. 그러니 좌충우돌,여기 저기를 기웃거리며 정보를 입수하기도 하고, 같은 연령대의 아이를 둔 학부모끼리 자연스레 친구가 되어 이래저래 육아정보 모임이 형성되는 건지도.

아이 키우기, 너무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일
"남들 눈 의식하지 않는 줏대로 키우자구나"


젊은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를 밝고 건강하게 키우고 싶어 하면서도 하수상한 이 시류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두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는 것이거든.그냥 '건강하고 예의만 바르면 돼'라고 생각 하다가도 옆 집 아이의 멋진 영어 발음을 듣거나 왠지 그 아이가 더 똑똑해 보이기라도 하면 괜시리 조바심같은 게 일고 말야.

그런,나와 같은 평범한 엄마들의 마음속엔 무엇이 들어있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았다.그와 동시에 얼마 전 읽은 부자 교육,가난한 교육이라는 단어가 슬그머니 떠오르더구나.
부자들의 아이들은 박물관이다,캠핑이다,해외견학이다 해서 어릴 때 부터 쌓아 온 지적 재산으로 인생의 시작을 앞서 나가기 시작하는데,가난한 아이들은 평범한 교육과정에 별 다를 것 없는 지적환경 속에서 살아가니 그 둘의 차이는 영원히 극복될 수 없다는,그래서 제 아이만큼은 최소한 가난해 지지 않도록 열심히 교육을 시킨다는 이야기.

천진한 아이들을 두고 한 잔인한 말들 인것 같았지만 이 시대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공감해 봤을 만한 내용이었어.하지만 두려운 생각도 들었다.그래서 어쩌자는 건가.그래서 남들이 보낸다는 학원은 다 보내고 학습지며,강좌며 울며 겨자먹기로 시켜야 되는 건가.

남들 눈 의식하지 않는 줏대도 필요하고 내 아이의 깊숙한 곳까지 다다를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하겠지만,역시 제일인 것은 "행복한" 아이를 만드는 일 같았어. 내 아이 개성을 확실히 파악해서 아이가 가장 원하는 가르침을 줄 줄 아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어야 할 것 같았어.공부를 잘 하거나 뛰어난 것도 좋지만 남들과는 다른 자신을 좋아하고,스스로 원하는 인생을 그려낼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것.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조화를 이뤄가는 곳 이라는 것,그래서 주위도 둘러보며 배려할 줄 아는 넉넉한 심성이 필요하다는 것.그럴 때 행복해 진다는 것.

아이를 키우며 부족한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기본적인 삶의 자세를 다시 배우기도 한다.나의 꿈도 잊지 않으면서 지혜나 지식을 소중히 생각하는,마음이 '진짜 부자'인 사람으로 살고 싶은 소박한 소망도 생각한다.
인생이라는 열린 문을 조금씩 열어가다 보면 줍게 되는 무언가가 있어서 그런 것들을 믿어가며 사는 것이 '사는 일'인것 같다. 벌써 한 아이의 아빠가 된 너와 이런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이 글을 쓰는 동안 반갑고 즐겁구나. 아이를 키운다는 건 이렇듯 평범한 얘기들을 맘놓고 할 수 있는 친구가 많아지는 일인건지도 모르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