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이웃'되어 살고 싶어요
세상과 '이웃'되어 살고 싶어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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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루
창가에 스며드는 햇살이
흩어진 기억을 깨우고
가슴 한 켠에 묻어 둔
허상의 조각들이 꿈틀댄다.

언제인가
거울에 비친
비뚫어진 내 모습이
너무 싫어 깨어버린
허상의 잔재가 꿈틀댄다.

세상이 흔히 말하는 장애인
또 하나의 내 이름이다
그래서 더 밝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했는지도
아니 그랬었다.

어쩜 숨기고 싶었던
장애가 날 여기까지 오게 했는지도
그럴런지도 모르겠다.
-우리이웃 소식지에서 발췌-

일반인과 섞여 평범한 삶 사는게 최고의 '꿈'
홀로서기 위한 '자립체험' 직접 나서


"내가 길을 갈 때 옆집 꼬마가 '장애인이다'고 말하기보다 '동훈이 오빠'하며 다정스럽게 인사해 줄 때가 가장 기뻐요" 마동훈씨(32.뇌성마비 1급)가 요즘 새롭게 느끼는 삶의 즐거움이다.
광주 북구 오치동 주공 2단지 한 아파트 안에서 세 남자의 '평범하게 살기' 모험이 진행되고 있다.

"내가 입맛이 없어 밥을 늦게 먹고 싶어도 공동체 생활이기 때문에 시간을 지켜야 해요. 쉬는 것도, 외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모두 '프로그램'에 의해 움직여야 해요" 이는 장애인 시설에서 수없이 느껴야 했던 고통이며 아픔이었다.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평생을 군대생활처럼 살아야 했던 이들은 '평범한 자유'를 찾아 이 아파트로 옮겨왔다. "하루를 살더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이 이들의, 나아가 모든 장애인들의 하나된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마씨와 함께 박종선씨(29.뇌성마비 1급), 심기태씨(42.지체장애 1급)는 지난해 7월 세상 밖에서 '세상 속으로' 드러와 자립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다.
반년 사이에 모든 게 바뀌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스스로 하루 일을 계획한다. '오늘은 무슨 반찬을 해 먹지, 은행가서 세금 내야겠구나, 오늘은 누굴 만날까' 등 이들은 모든 일을 본인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다. 다만 몸이 불편해 이동할 수 없는 부분만 자원봉사자의 손을 빌릴 뿐이다.

"장애인도 똑같은 이웃인데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보죠. 하지만 우린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일본은 이미 15년전 자립생활 체험홈이 운영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세 남자의 용기가 '최초의 모델'이 됐다.

"스스로의 삶 살려는 건 장애인의 당연한 권리"
'나만의 집' 꾸리는 진정한 자립이 최종목표


이들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마씨가 어릴 적 수련회에서 만났던 주숙자 씨(42) 덕분. 주씨는 봉사활동을 통해 마씨를 친누나처럼 자주 만나고 이야기 하면서 자립생활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단다. 하지만 어려운 현실 속에서 머리 속으로만 그 꿈을 그리고 있던 중 어느날 마씨가 털어놓은 고민은 주씨의 마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난 늙어죽을 때까지 이 시설에서 살아야 할까".
이후 주씨는 마씨 명의로 통장을 만들고 자립자금을 모으기 시작, 결국 마씨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한국에선 전혀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어요.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요" 하지만 항상 줄맞춰 기계처럼 살아야 생활을 벗어나 스스로의 선택이 보장되는 삶을 갈망했던 이들을 보면서 주씨는 도중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시설에서 벗어나 일반인처럼 살 수 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곳은 실험단계일 뿐 각자의 보금자리를 만들어 독립해야죠" 여기에 모인 세명이 평생을 함께 산다는 것은 또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 결국 또다른 '시설'이 되는 셈이다. 이에 주씨는 이들이 장애인이라는 제약없이 완전한 독립을 할 수 있도록 이젠 개인이 아닌 국가가 나설 때라고 강조한다. 남과 조금 다른 모습이다는 이유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다른 이들과 높낮이가 없는 평등한 '이웃'이 되도록 말이다.

'우리이웃 자립생활센터' 주숙자씨
"날씨가 조금만 풀리면 종선 씨를 날마다 우체국에 보낼 꺼예요"
주숙자 씨는 모양만 갖췄을 뿐 실제 통행조차 불가능한 장애인 시설을 바꾸기 위해 직접 장애인들이 뛰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위에 계시는 분들이 모두들 책상에 앉아서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정책을 짜고 있는데 그게 장애인들의 삶과 맞겠냐"는 것.
"센터에서 함께 일하면서도 가끔 제 기준에 맞추다 보면 이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걸요"라고 말하는 주씨는 장애인들이 직접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관리들부터 생각이 바뀌어야 이 사회도 바뀔 수 있어요"라고 일침을 놓는 주씨. 장애인들은 항상 비장애인들보다 힘들고 어렵게 살아야 도와준다는 상식 아닌 상식을 깨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한 사람이 자립할 수 있도록 봉사자들은 모두 유료화를 그 비용은 정부에서 지원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최초의 모델이 되고 있는 우리이웃에서 1사람당 13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을 관계자들은 "인력 낭비"라고 말하는 데 주씨는 불만이다.

"정부관리부터 생각 바껴야 이 사회 바뀔 수 있어요"

주씨는 잘못된 정책 때문에 속상한 일이 하나 더 있다. 앞으로 체험홈에서 나가 홀로서기를 해야 할 동훈씨에게 아파트를 신청할 자격이 없다는 것.
영구 임대아파트를 신청하려면 주민등록상 동거인 2인 이상인 경우에만 가능하다. 그러니 부모형제 없는 독거장애인에게 가장 저렴하게 혼자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주씨는 시청 문턱이 닳도록 찾아가 정책 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나 대답은 한결같이 '저런 장애인을 어떻게 혼자 살게 하느냐'는 것이다.
이에 주씨는 "이처럼 겉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 때문에 장애인들은 세상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항상 결코 원치않는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고 강력히 항의하며 편견으로 얼룩진 이 사회와 싸워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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