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문화
껍데기 문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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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년 초부터 온 나라가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에 들떠있는 것 같다. 대통령도 올해의 최대 과제를 두 가지 국제 스포츠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고, 매스컴은 연일 월드컵 카운트다운을 세고 있다. 뿐 만 아니라 지구 최대의 잔치라고 끊임없이 광고하며 축구 16강에 절대절명의 국운을 걸기라도 하듯 요란하다. 그야말로 히딩크 감독의 말 한마디에 온 국민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스포츠가 갖는 매력과 대중의 관심을 부정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우리의 눈과 귀를 모두 스포츠 잔치에 빼앗길 만큼 한가한 나라인가 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아프카니스탄을 무력으로 평정한 부시 정권은 곧 다음 공격 목표를 찾기에 골몰하고 있으며, 수단, 이라크 등과 더불어 북한이 들먹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최근에 만들어지고 있는 미국 영화에도 자주 북한이 '나쁜 적'으로 묘사되는 현실을 보면 착잡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 또한 우리나라의 극우파들은 끊임없이 현정부의 햇볕정책에 딴 죽을 걸기 일쑤며 부시행정부의 강경 대북 정책을 부추기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와 높은 실업률로 인해 서민들의 생계는 날로 어려워지고 있고, 임기 말에 들어선 허약한 김대중 정권은 각종 게이트로 휘청거리고 있다. 이러한 불안한 정치, 경제적 현실을 외면하고 월드컵이 모든 고통을 일시에 해방 시켜줄 수 있는 요술 방망이라도 되는 양, 날만 새면 4조원의 부가가치 창출과 수십만의 고용 확대를 선전하는 정부의 모습이 애처롭다. 월드컵은 이미 세계 다국적 스포츠 기업들의 상업적 이득에 좌우 된지 오래 이며, 어느 의미에서 '그들만의 잔치'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슨 '문화 월드컵'을 내세우며 겉멋만 화려한 상품 문화에 온 힘을 기울이고, 외국 손님 접대에 만전을 기울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치르는 국제 행사인 만큼 깔끔하게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외부 손님들을 위해 하루아침에 갑자기 기존의 생활 모습을 버리고 새로운 국제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사는 방식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 외국인들에게 더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다.

상점에서 상품을 사다보면 화려한 포장으로 몇 겹을 싸서 장식했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실지 내용물은 극히 보잘것없어 실망할 때가 많다. 문화라는 것도 몇 천년 역사가 흘러오면서 우리 생활에 곰삭은 실제 모습이 중요하지, 일시적인 행사를 위해 급조한 상품 문화는 '껍데기 문화'에 불과할 따름이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 방문객들도 기실 이러한 진솔한 우리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허례허식으로 치장한 번드르한 모습에는 외면하기 십상이다.

월드컵 뿐 아니라 모든 일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하는 법이다. 따라서 어떤 일이든지 양면을 볼 수 있는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너무 지나치게 일방적인 면만 확대하여 흥분하는 사람은 진정한 문화 국민이 아닐 것이다. 이제 월드컵을 바라 보는 시각도 좀더 차분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성숙된 모습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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