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엣것들이 어구차게 더 그란당께
우엣것들이 어구차게 더 그란당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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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 안에서도 몇 가구씩을 묶어 세분하여 부르는 명칭이 있다. 예를 들면 산밑에 있는 집들을 산밑에, 산모퉁이에 있는 집들은 모랭이, 강변에 있는 집들은 갱밴, 이런 식이다.

내가 살았던 마을도 안고랑, 골안, 오구에, 원테, 비까래, 사장거리 등 마을 안에 여러 지명들이 있었다. 큰 도시에 여러 개의 구나 동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어느 마을에서나 쉽게 발견되는 지명 중 '-너매'나 '새터'라는 것이 있는데, 그런 지명들은 한 마을이라고 하더라도 별개의 공간 성격이 강했다. 씨족 공동체의 성격이 짙었던 우리네 마을들은 외지인들이 이주해 오는 것을 무척 꺼렸다. 그래서 피치 못할 사정으로 외부에서 사람이 이주해 오면, 일정한 금 밖에 살게 하였는데, 그곳이 '새터'나 '-너매'가 된다.

'새터'는 집이 없던 곳에 집을 지은 새로운 터를 뜻하고, '-너매'는 어느 경계를 넘어 선 곳을 뜻한다. 금 밖인 것이다.

금 안에 사는 사람과 금 밖의 사람은 마을의 대소사를 논할 때 발언권부터가 다르다. 금 안의 사람들이 보기에 금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일종의 '우엣사람들'이다. 비주류인 것이다.

씨족 모여살던 우리네 마을
외지인이라도 들어와 살라치면
그들은 경계밖에 사는 비주류
일종의 '우엣것들' 이었다


'-너매'에는 마을의 주를 이루는 씨족들과는 다른 사람들이 산다. '타성받이' '당골' '산지기'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외지인들이 자리를 잡는다. 물론 여기에서 정체를 알 수 없다는 것은 기존의 마을 사람들의 시각에 의해서이다.

내가 당장 고향이 아닌 낯선 마을로 이주해 간다면 나는 그 마을의 '-너매'나 '새터'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다. 낯선 마을에서 나는 타성받이거나 내력없는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타성받이'는 마을의 주를 이루는 사람들과 성씨가 다른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고, '산지기'는 문중의 재산을 일임하여 관리하는 사람을 뜻한다. 그런데 한 마을에 오래 살았더라도 영원히 -너매'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당골들이 그랬다.

'당골'은 '당골네'라고도 하는데 무당을 뜻하는 말이다. 무당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신내림에 의해 무당이 되는 강신무와 세습되어 무당이 되는 세습무가 있다. '당골'은 세습무에 한정하여 쓰는 용어이다.

세습무인 당골은 일정한 관할 구역을 가지며,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많은 일에 관여를 한다. 길흉을 점쳐주는 것은 기본이고 신년이 들면 신수를 봐 주고 사주팔자나 궁합은 물론이요, 이런저런 말못할 사정까지 들어주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았을 때 가장 먼저 오는 손님도 당골이었고, 몸이 아플 때도 당골에게 보였으니, 인생 상담사에다가 일종의 의사 역할까지 한 셈이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하다보니 당골의 마을 출입은 잦을 수밖에 없었고, 어느 집을 불현듯 가더라도 흠이 되지 않았다. 자주 가는 가게를 단골집이라고 하고, 자주 오는 손님을 단골이라고 하는데, 이 '단골'은 무당을 뜻하는 '당골'에서 유래되었다.

어려서 많이 들었던 지청구 중의 하나가 '우엣것들이 어구차게 더 그란당께.' 하는 것이었다. 장자를 중시하였던 가정에서 큰아들이나 차남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은 우엣것들이었는데, 먹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인지라 어쩌다 사과 몇 개라도 생기는 날이면 형제간에 쟁탈전이 벌어지곤 하였다.

그럴 때면 나이 든 형들은 동생들 생각에 손대지 않게 되고, 어린것들은 제 입 생각에 먹을 욕심만 남게되는 법인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말이었다.

'어구차다'는 말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드세다.'는 뜻으로 쓰인다. 좋은 말로 바꾸면 활동력이 왕성하고 적극적인 생활 태도를 가진 사람을 어구찬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든 우엣사람들은 어구차거나 숨을 죽여야 살아남는 법이다.

이대흠 시인은 전라도 고향 내음을 더 가까이 전달하기 위해 홈페이지 리장다껌(www.rijang.com)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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