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서, 영상으로 살아가기
광주에서, 영상으로 살아가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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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운동가는 '무얼 먹고' 사는가라는 질문을 나를 존경한다는 후배대학생으로부터 받았다. 아아, 곤혹스럽도다. 독자들에 대한 새해 인사로 여기고 글쓴이의 '작업'을 공개한다.

글쓴이가 좋아하는 '동사서독'의 어투를 빌어 말하자면 글쓴이는 현재 '의미 있고 돈도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일이란 80년 5·18민중항쟁과 관련된 영상물을 디지털화하는 것이다. 아마 이 작업이 마무리된다면 5·18민중항쟁은 우리 현대사의 수많은 '항쟁의 기억' 중 처음으로 영상으로 '재현'되는 사건이 될 것이다.

이 영상물 중에는 80년 당시의 외신 기자들이 촬영한 보도영상물과 항쟁이후 광주의 진실을 알려주었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항쟁에 참가한 당사자들과 이후 진실규명투쟁을 벌였던 분들의 증언채록영상물 등이 있다. 이들 영상자료들은 그동안 '5·18기념재단', 'KBS광주방송국', '5·18영상채록단' 등이 수집 제작한 영상물들이다.

이 작업을 말하자면 모래밭에서 보석을 찾는 것과 같은 재미가 있다. 그동안 보아왔던 많은 5·18영상물중 아직 대중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날 것' 그대로를 만날 수 있다는 건 분명 큰 재미이자 보람이다.

이들 영상들 중 나를 가장 당혹하게 했던 영상물이 있다. 80년 5월 27일 새벽의 도청안 복도를 촬영한 영상물인데 이 그림에 등장하는 진압군들은 너무 평화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아직 어슴프레한 어둠이 남아있는 1980년 5월 27일 도청복도에서 철모에 흰띠를 두른 공수부대진압군들이 사로잡은 시민군들의 팔과 다리를 포승줄로 묶어 복도에 엎드려 놓고 사복을 입고 머리가 긴(아마 공작부대의 일원일 듯) 동료들과 담배를 나눠 피우며 웃고 떠드는데 너무나 비현실적인,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장면이었다. 마치 훈련을 마친 공수부대원들이 휴식시간을 즐기듯 아침을 기다리는 그들에게는 아아, 이 살육이 너무나도 '일상적'이었을까?

그러나 정말로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영상들은 유가족의 증언들이다. 그들이 폭도의 가족에서 투사가 되기까지 시시콜콜한 일상에서부터 투쟁의 순간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 할 나무나 가슴이 메어온다. 이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감정에 대한 것이고 그들의 삶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음에서 느끼는 동질감 때문이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이 너무나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그림들이다.

영상운동이 즐겁고 의미 있는 이유는 지금 이곳의 진실을 가장 잘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해에는 비디오저널리스트 이하 영상으로 먹고 살고자하는 이들과 함께 이 감동을 나누고 싶다.

추신 ; 5·18관련 영상물 디지털화작업의 결과물 공개는 올해 5월 5·18자료실개관과 함께 계획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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