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론]그림과 축구, 그리고 문화
[문화칼론]그림과 축구, 그리고 문화
  • 김하림
  • 승인 2002.0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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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띠 해에 우리 지역에서는 두 가지 커다란 행사를 만나게 된다. 하나는 그림이고 하나는 축구이다. 편견에 치우쳐서 말한다면, 이 둘은 양극단에 처해 있는 인간의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하나는 한정된 시간에 굵은 땀을 뚝뚝 흘리며 가쁜 숨을 내쉬는 집단간의 힘겨루기 라는 육체적 행위라면, 하나는 정지되어 있는 극히 개인적인 정신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둘은 모순되어 보인다. 고개를 숙인 채 깊은 사색에 잠겨있는 축구선수를 상상하기도 어렵고, 씩씩거리며 뛰어다니는 화가를 떠올리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축구시합은 짧은 기간 동안 다수의 관중이 모여들어 소리지르고 열광하지만, 그림전시회에는 장시간 동안 드문드문 관객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거나 흔들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둘 사이에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것일까? 공통점은 둘 다 우리 지역에서 개최된다는 것이고, 약간의 시간이 겹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장소만 빌려주는 입장에서는 우리들의 일상적 삶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오히려 우리들의 일상적 삶을 불편하게 만들기까지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교통체증은 뻔한 일이고, 시내는 혼잡스럽고, 괜히 잘못한 것이 없을까 주눅이 들기도 하고,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비엔날레와 월드컵'은 사실 귀찮은 일일 수도 있다. 일상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에게는.

또 편견에 치우쳐 말하자면, 이 둘을 '문화'라는 고리, '문화'라는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근본적 침전물로 연결시킬 수는 없을까? 어찌되었든 이 두 행사에 참가하거나 관람하는 사람들은 '행사'만을 보거나 즐기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행사'가 개최되는 지역과 사람들의 문화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체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지역의 문화를 담당하는 세 개의 층위들이 짊어진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경제행위가 이루어지는 시장(음식점, 숙박업소, 상가), 정치와 행정이 관여하는 공공영역, 그리고 민간조직 혹은 시민운동조직이다. 이 삼자의 균형과 조화가 이루어진다면 지역의 문화는 좀더 훌륭하게 펼쳐질 수 있을 것이고, 관객들은 이를 한껏 즐기게 될 것이며, 이를 계기로 지역은 물론 관객 모두의 문화와 삶의 질도 향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공공부문에서는 교육과 정보를 제공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전히 규제와 감시에 치우쳐 있어서는 안된다.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시장부문에서는 단기적 이익 추구가 장기적 손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경제적 이익이 문화적 손해가 될 수 있고, 이것이 장기적으로는 경제적 손해로 이어진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한다.

민간부문에서는 공공봉사의 자세가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양성과 혁신성, 그리고 개방적 정체성을 확보하고 이를 관철시키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이 삼자가 올바르게 결합하고 상호 균형을 구축한다면 '그림과 축구'라는 양극단적 인간행위를 서로 인연을 맺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따라서 각 부문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다른 부문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공공부문이 지나치게 '정치적 행위'에만 집착하거나 그 성과를 독점하려고 한다면, 이 균형이 깨지는 것은 자칫하다가는 나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은 바둑판에서만 적용되는 교훈이 아니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 지역은 80년 5월 기간에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룩했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당시는 비록 고립된 절해고도(絶海孤島)였으나, 이 기간에 이루었던 '대동세상'은 하나의 역사적 교훈이자 감동으로 지역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서 울려 퍼져나갔다. 이러한 정신과 행동을 다시 체험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운이 아니겠는가.

/김하림[광주전남문화연대 대표, 조선대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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