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이름값 하려면 광주미술문화 새시대 열어야 합니다
'광주' 이름값 하려면 광주미술문화 새시대 열어야 합니다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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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렉터 하정웅-민중미술가 홍성담 대담>

지난 7일 광주시립미술관에 새로운 작품이 1점 들어왔다. 시립미술관 측은 이 작품을 두고 '광주시립미술관이 꼭 소장해야 할 작품'이라며 새해에 받은 '귀한 선물'로 반기고 있다.

임오년 새해 시립미술관 1호 소장품이 된 선물은 민중미술가 홍성담의 작품 '천인'(The Thousand People, 850×260cm). 하지만 그 선물 보따리는 두 사람의 합작품이다. 재일교포 2세 하정웅씨와 작가 홍씨. 하씨는 현재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이기도 하다.

왜, 무엇이 그리 귀하다는 것인가. 그 표현엔 여러 의미가 중첩된다. 광주시립미술관은 80년대 민중미술 대표작가 홍씨의 작품 169점을 최근 6개월여 동안에 무상으로 소장하게 됐다. 그렇다고 홍씨 작품의 무게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 사이에는 하씨의 광주사랑정신이 매개가 됐다. 두 사람을 9일 광주시립미술관에서 만났다. 귀한 선물이라는 보따리를 풀어본다. /편집자 주


광주시립미술관 홍성담 작 '천인' 소장
80년대 판화 연작 이은, 새해 '뜻깊은 선물'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이를 수집하는 콜렉터가 있을 때 돈도 벌고, 고상한 표현으로는 성장도 한다. 광주시립미술관에 하정웅콜렉션을 따로 두고 있는 하씨는 광주에, 전남에 뿌리를 둔 재일교포 2세이지만 미술계에서 흔히 칭하는 콜렉터로 통한다.

바로 그런 콜렉터와 작가와의 만남. 물론 하씨와 홍씨의 만남은 전혀 그렇게 시작된 건 아니다. 그러나 이날 자리가 있기까지 배경도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개가 끄덕거려지는 점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만났나.

▲홍성담=콜렉터의 눈이 중요하겠지요.
▲하정웅 "'광주'의 역사성과 문화를 향해 6년 짝사랑해온 결실을 이제 보았습니다"

▲하정웅=6년간 짝사랑한 결실을 이제 이루었습니다(얼핏 눈가가 적셔진다). 1회 광주비엔날레에 나온 당신의 대작 '천인'을 본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하씨가 접한 홍씨의 첫 작품이었다. 그 전에 일본작가로서 광주5월을 표현한 작가로 유명한 도미야마 다에꼬씨로부터 홍씨의 프로필만 전해들은 정도였다.

홍씨의 작품 '천인'은 제1회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으로, 광주 무등산 뒷자락 한 줄기를 따라 야트막한 야산 골짜기 안에 돌에 새긴 미륵이 화해와 평화, 그리고 천지가 화합하는 의로운 세상을 기다리면서 서 있다. 망월동에 누워있는 오월전사를 기리면서 천불천탑을 상징하는 돌부처로 좌절된 혁명의 꿈을 표현해 냈다.

▲하=당신의 그림과 도록을 통해 세계관을 읽었습니다. 내 철학이나 인생관과는 다르다는 생각에서 감히 접근하기조차 '무서웠습니다'. 무섭게 살아온 당신의 민족관, 세계관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때부터 홍씨를 내심 존경하면서 그의 그림 수집 욕심으로 발전했고, 접근할 시기만 탐색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작년 5월 광주시립미술관이 기획한 '오월정신전-행방불명'에 홍씨가 참여하면서 하씨가 꿈에 그리던 랑데부(?)로 연결됐고, 이 자리에서 하씨는 조심스럽게 작품 수집(80년대 민중미술 판화 일체)을 타진했다.

▲홍=선생님께 미안하지만 사실 선생님 제의를 받고서야 '하정웅콜렉션'을 심층적으로 보았습니다. 콜렉션의 주제를 읽고 나서 스스로 울분을 참지 못했고, 그 길로 요구하시는 내 작품 모두를 내놓기로 결정했지요.

홍씨가 말하는 울분이란 이런 거다. 하정웅콜렉션은 인간의 실존, 즉 인권과 평화가 주제였다. 1000점에 달하는 작품을 광주에 기증했는데, 과연 지금 광주가 그런 의미가 담긴 콜렉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나 하는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하정웅콜렉션의 정체성을 광주미술계가, 나아가 광주문화계가 광주문화로, 인프라로 확장시킬 수 있는 힘을 아직 키워내지 못한다는 우려가 앞섰다.

홍성담 "하선생 콜렉션 '인권·평화' 주제에 울컥
광주미술계 정체성 도움 위해 기꺼이 기증
선생 열정이 광주미술발전 뿌리됐으면"


▲작가(홍성담·오른쪽)의 자존심과 콜렉터(하정웅)의 열성이 어우러졌을때 콜렉션은 성공한다. 그 콜렉션의 결실은 광주시립미술관에 안겨졌다.
사실 하씨의 광주미술 사랑은 이미 그의 콜렉션 기증으로 확인된 바 있어 더 이상 언급이 필요하지 않다.

홍씨는 하정웅콜렉션을 '광주'라는 땅이 선택받은 선물이라 표현했다. 그에 대한 답이기도 하고 자신이라도 그런 정체성에 한몫 거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지난해 5월 자신의 80년대 민중미술 판화 연작 168점을 하씨에게 건넸고, 하씨는 이를 곧바로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콜렉션에 기증했다.
그러나 하씨는 이에 만족하지 못했다. 6년 전 전율했던 작품 '천인'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사실 지난해 10월 하씨가 홍씨의 '천인' 작품 수집 제의를 했을 때 홍씨는 단호히 거절했다. 이유는 앞에 언급된, 아직 채워지지 않은 광주문화, 그것 때문이다.

하정웅 "1회 비엔날레서 그의 작품에 전율
'당신 그림은 광주에 있어야 한다' 설득
6년 짝사랑 이제야 결실 맺었네요"


하씨 또한 이를 용인하면서도, '천인' 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당신 그림은 광주에 있어야 한다'는 집념으로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난 12월초에 홍씨로부터 답을 받아냈고, 7일 홍씨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광주시립미술관에 전달했다.

-무엇이 생각을 바꾸게 했을까.

▲홍=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이번 결정 후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랐습니다. 작년 1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80년대 미술품 구입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나도 걸개그림과 5월판화연작 판매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5월판화만 주었고 걸개그림은 거부했습니다. 당시 이건 서울로 가면 안된다. 광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불현듯 한 것이지요. 그때 광주시립미술관에 항의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이런 일 하는데 광주에서 무엇하느냐 라고요. 그런 점이 나를 광주에서 떠나게 한 동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하정웅콜렉션이 그 일을 해내고 있다는 걸 늦게라도 확인했습니다.

▲하=지금 생각하면 우린 처음부터 '인연'이었던가 봅니다. 1회 비엔날레로 인연을 맺은 후 당신을 일본에서 만났을 때 당신은 손에 '전화황 화집'을 들고 있었지요. 그 화집은 내가 수집한 작품들로, 내가 만든 것이었습니다.

▲홍=네. 맞습니다. 그 화집은 광주에서 이미 구입해 내가 갖고 있었던 것인데, 일본의 고서점에서 그 책을 본 순간 '이 책은 여기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만으로 그냥 샀습니다. 왜냐하면 전화황의 작품이 담고 있는 일제시대의 암울함에선 한국적 한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한국적 인상주의랄까요. 한국의 역사를 정확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통했을까요?
어쨌든 선생님 콜렉션에 제가 동참해서 그 정체성이 돋보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생각을 바꾸었는데, 한편으론 오히려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합니다. 장기적으로 선생님의 인프라가 광주미술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화두로 연결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광주가 이를 어떻게 풀어내느냐는 광주에 뿌리를 갖는 우리 모두의 숙제이기도 하지요.

▲하=고맙습니다. 나 또한 내 40년 일생동안 혼신을 바쳐 기도하면서 모은 모든 것을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내 콜렉션을 '기도의 미술'이라고 하지요. 말로만 예향이라 부르짖기 보다 실제로 실행해야 예향이 됩니다. 나는 그런 예향을 만들기 위해 실행하고 있고, 또 앞으로도 계속 할 겁니다. 그래서 인지 한번도 아깝다는 생각 해본 적 없습니다.

작가의 자존심과 콜렉터의 열성이 어우러졌을 때 콜렉션은 성공한다는데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작가와 콜렉터 관계에서 광주미술, 나아가 광주문화 사랑이 서로 통해 있었다는 점이 확인됐기에 두 사람이 빚어낸 정초 선물이 더 귀하고 값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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