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발전, 무엇부터 생각해야 하는가
문화 발전, 무엇부터 생각해야 하는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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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발전, 무엇부터 생각해야 하는가





새해 첫머리를 문제제기로 시작하고 싶다.
우리 민속을 보면 정월에 우선 막히고 맺힌 것을 밝혀내고 이것들부터 뚫고 푸는 절차들이 많다. 마치 우리 민속이 그러하듯이 새해 첫머리에 문제제기부터 하고 다음부터 이를 풀기 위해 모색하려 한다. 오늘의 세계화는 세계 곳곳에서 나름대로 커 온, 자연에 대한 감성과 이성, 문화에 대한 감성과 이성을 무질러 버리고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와 자본제적 시장경제적 합리성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의 잣대로 재단해 버리는 과정이다.
그것도 미국을 비롯한 극히 소수에서 비롯된 잣대로 전세계 사람들의 살림살이 방식, 생각하는 방식, 세상을 보는 방식을 틀거리지워 버리는 방식이다. 사람들이 특수하게 키워 온 세상보는 눈들이 깨져 나가고 획일화된 틀거리 속에 편제되어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획일화에 대해 눈치조차 채지 못한다. 다른 곳의 사례를 보면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북미 인디언들은 오랫동안의 백인지배 체제에서 벗어나고 자주권을 획득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 뿐만 아니라 획일화되어 가는 자본제적 문화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하여 특별한 연구를 한다. 토착지식(indigenous knowledge)이라는 자신들 나름대로 키워 온 지식체계에 대한 연구이다. 색깔, 시간, 소리, 식물, 동물 등등 그 분야는 대단히 다양하다. 이것들의 민속적 내용보다 이들에 담긴 사유체계를 연구하고 사람들이 그 사유체계를 전승하도록 노력한다. 매스미디어와 상품을 통해 들어 와 박히는, 자본제적 문화에 의해 포착되고 포섭될 수 없는 자기문화 영역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폐쇄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가에 대해, 세계에 대해 운신의 폭을 넓히고 목소리를 키워가려는 것이 이들의 요즈음 움직임이다. 우리는 잘 알지 못하지만 제4세계라는, 부족사회 혹은 원주민 집단의 정치와 문화가 점점 더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게 요즈음의 추세이다. 바로 이 때 이들은 자기 문화의 사유체계를 연구하고 전승하며 자본제 문화로 포착할 수 없는 자기 체계를 가지려 한다. 축제를 벌여도 관광객에게 자기 문화를 알리고 관광객과 손잡으려 하는 행사가 있는가 하면 외부인을 통제하는, 엄격한 자기들 행사가 있다. 바로 이 엄격한 행사 때문에 외부사람들은 오히려 인디언 축제의 가치를 인정하고 권위를 인정한다.
다른 예를 보자. 영토분쟁 때문에 인디언들이 꽤 잘 사용하는 것이 지리정보시스템(GIS)인데 바로 이 GIS와 같이 일반적인 시스템 못지 않게 발달시키고 있는 것이 토착적 지리 인지(認知) 체계이다. 자연에 대해 자기들 나름대로 사유하여 마련한 종교적 공간의 인지 체계, 산과 바다와 강과 숲 등에 대해 나름대로 분류하고 구획하고 종합하는 인지 체계 등등이다. 인디언 전문가들은 일반적인 GIS와 토착적 공간 인지체계 두가지를 모두 구사한다.


놀라운 것은 비단 인디언 뿐 아니라 이들을 지배해 온 백인들도 토착적인 인지와 지식의 세계를 매우 중시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역사가 짧다하지만 그래도 이백년이 넘도록 만들어 온 지역 커뮤니티들의 문화를 중시하고 그에 담긴 토착적 세계를 체계화하려 한다. 대학에서는 환경, 문화, 과학 관련 최첨단 분야의 하나가 토착지식 연구이다. 미실리콘밸리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만들어내는 이면에 전국 곳곳에서 지역의 공동체문화와 토착적 세계에 대한 연구와 전승이 이루어진다. 바로 이 나라가 세계체제를 움직이려 하며,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대해서 자기중심적인 자본제 문화를 이식시키고 있다. 우리는 그 장단에 맞춰 세계화를 외치고 있다. 바탕을 잃고 있는데 무엇을 근거로 문화를 발전시킬 것인가. 정작 그 헤게모니를 가진 곳에서는 자기들 나름의 체계를 가지려 애를 쓰는데 우리는 우리 것마저도 그 심층 체계는 무너뜨리고 껍데기만 갖고 문화적 특수성이라 외친다. 그리고 세계화와 세계 시민의 환상 속에 산다. 광주, 전남이 진정으로 문화 발전의 산실이 되려면 이 환상에서 먼저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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