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겨울 풍경'
'아이들의 겨울 풍경'
  • 시민의소리
  • 승인 2002.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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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말 사잇길>

서리가 내리고 눈이 오고, 방학을 하게되면 가장 먼저 한 일은 '뺑돌이(팽이)'나 '자치기'를 만드는 것이었다. 겨울에는 참으로 놀이가 많았다. 여름이나 가을을 서리하는 재미에 보낸 아이들은 겨울이 되면 빠이치기(딱지치기)를 하든가, 나이먹기 같은 놀이를 하였다.

뺑돌이 만들기는 협업이 필요한 일이었다. 적당한 굵기의 나무를 구해와서 한 병은 토방에 올라 나무 위에 쭈그려 앉고, 제법 낫질이나 하는 아이는 나무를 깎아내서 뺑돌이를 만들었다. 상당히 힘든 일이었지만, 다 만든 뺑돌이를 돌리다보면 물집 든 손의 고통도 남의 일이 되었다. 뽕나무 껍질로 만든 뺑돌이채는 질기기도 하고 치면 칠수록 잘게 쪼개져 손에 익은 팽이채는 여간 정이 드는 것이었다.

깎아 만든 팽이 자치기 신나고
저수지 썰매타기 하루 해가 짧았지


손재주가 좋은 아이들은 삼발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요즘 흔히 볼 수 있
는 세발 자전거와 유사한 형태였다. 바퀴는 긁은 나무에 구멍을 뚫어서 사용하고 손잡이까지 만든 삼발이는 아무나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서 선망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하지만 만든 공력에 비해 삼발이의 바퀴는 부실한 것이어서 내리막길에서 몇 번 타다보니 바퀴가 부서지곤 하였다.

겨울이면 너나없이 가지고 싶은 물건이 썰매였는데, 모든 아이들이 썰매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요즘이야 판자나 철사가 흔하게 버려지는 물건이지만, 당시에는 녹슨 철사 하나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못이 흔한 것도 아니라서 철사 한토막 있으면 많은 것을 만들 수가 있었다. 부잡스런 아이들은 학교 유리창 밑에서 창문이 굴러갈 레일을 뜯어와서 썰매 만드는데 쓰기도 하였다.

눈 내린 아침에 일어나면 왜 그리 신났던지, 마당과 길을 대충 쓸고 나서 저수지에 모인 아이들은 아침 밥 먹으라는 소리도 외면한 채 얼음지치기에 바빴다. 얼음이란 것이 가운데로 갈수록 얇아지는 것이어서 너무 가운데로 가면 쩡쩡 금가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였고, 어쩌다 장난 끝에 얼음이 깨어져 빠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런 날은 빠졌다 나온 아이의 영웅담으로 하루해가 너무 짧았다.

갈쿠나무 한포대 긁어온 뒤
호호 불며 먹던 고구마 맛이란…


썰매를 모두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대나무로 스키 비슷한 것을 만들어 타기도 하였는데, 그것을 칭했던 용어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눈이 많이 내린 날엔 저마다 비료포대 하나씩 들고 비탈진 산기슭에 모여 미끄럼을 탔다. 엉덩이가 아프기 때문에 비료포대에는 방석크기 정도로 짚을 넣었었는데, 요새 유원지 같은 곳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물썰매장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시골의 아이들이 그렇게 놀이만 하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노는 시간이 절반쯤이라면 나머지 시간은 일을 하여야 했다. 갈퀴 하나씩 들고 줄지어 산으로 가야했다. 갈퀴로 긁어오는 나무를 가래나무 혹은 갈쿠나무라고 하였는데, 갈퀴를 쓸 수 없는 어린 아이들은 나무 그루터기를 채취하는 일을 하였다. 손 호호 불어가면서 등걸 한포대 하다보면 해는 저물고 점심 대신 먹었던 고구마는 잦은 방귀 소리만 내었다.


이대흠 시인은 전라도 고향 내음을 더 가까이 전달하기 위해 홈페이지 리장다껌(www.rijang.com)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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