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선부지…사라지려는 것들의 아름다움
폐선부지…사라지려는 것들의 아름다움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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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집의 제목이었을 것이다. 모든 사라지는 것은 여백을 남긴다는 것, 지금 광주에는 그런 사라지려는 풍경하나가 사람들에게 벌거벗은 체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바로 폐선부지 10.8km 구간이다. 기차라는 것은 인간의 물질적· 정신적 욕망을 공간 이동시키는 순환과 소통의 네트워크라 볼 수 있는데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 형태는 분절된 마디를 이어서 만들었고, 도시 또한 그 기차의 길을 만들기 위해 선을 그어 분절을 강요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철로가 놓인 그 자리는 도심의 변방이었는데 사람이 사는 집이 변방을 먹어 들면서 철로 또한 사람에게 버거운 존재로 자리하게 되어 버렸으며, 그런 결과들은 매해 마다 보고되는 도심내의 철도 사고 보고에 철저하게 적시되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기차가 가는 길과 차와 사람이 가는 길 사이의 분절된 교차로 30여 곳은 광주시의 모든 교통난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되기도 했다. 욕망을 실은 기차, 하지만 더 큰 욕망을 위해 멀이 보내야 했던 그 기차가 더 이상 오지 않는 길 4만 8천평의 공간. 그 공간을 유랑인이 되어 떠나보는 여행을 제안하며, 먼저 그 길을 걸어본 입장에서 보고를 드린다.

2001년이 4일 남은 현재 그곳은 철로와 고일목은 걷혀져 나가고 그들의 받침이 되었던 쇄석만이 옛 길의 흔적을 가늠하게 해 주고 있다. 뼈아픈 관절음을 내며 인간의 욕망을 실어 나르던 철로가 푸른 길로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휴지기에 접어 든 것이다.
그 일단멈춤의 기간이 얼마일지는 현재 정확하지 않지만 선로 곁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했던 기차의 소음과 결별하는 대신 꽁꽁 잠궈 두었던 쪽문을 열 수 있는 여유도 생겨났고, 열차가 회전하는 구간에 있었던 약간의 자투리 땅에 마늘이며, 대파며, 시금치며 갓 따위를 심을 수 있는 공간도 마음먹기에 따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중단된 폐선의 시발점 시청 앞 사라진 철로의 교차로를 지키던 초소터는 중흥동 어른들의 열망을 담아 중흥노인정이 가설물로 들어서 있었다. 중흥 노인정이라는 간판에서 읽혀지는 기호는 현대사회속에 소외된 노인들의 현주소였고 그들의 소망이 담긴 "중흥노인정"이라는 간판에는 자못 근엄한 얼굴로 현대인에게 일갈을 하는 모습이 베여있다.

좀 더 길을 따라 나서니 철길 군데군데 쇄석을 거두고 시금치며, 상추를 심어 놓은 공간이 나타나고 그곳에는 어김없이 자신의 구역임을 상징하는 울타리가 있다. 그동안 식물하나 기를 수 없었던 안집 마당의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리라 생각하고 보니 울타리의 생김(나무, 철근, 철조망)에 따라 그 조그만 땅을 일군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경계의 신호인 울타리에 표현된 주변 사람들의 심정을 읽다보면 웃음보다는 다시 치열한 기차바퀴 아래 내동댕이쳐진 느낌이었다.
사라진 농장을 대신하여 그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농장다리에서는 기찻길 보다 먼저 더 멀리 밖으로 사라진 감옥에 대한 기억과 죄수복을 입고 배추밭을 가꾸었을 그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학문으로 성을 이루는 공간 조선대학교 앞의 기찻길은 역시 시대의 자화상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사는 것에 버둥거리는 도시의 사람들에게 그들은 붉은 글씨로 그들의 구호를 담장에 새겨 두었다. "미국 전쟁 반대 부시 살인마".

공대에서 가까운 곳에 이르니 정겨운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식당이었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메뉴들은 모두 전통에 기대인 어머니의 손맛이라는 점을 들어 우리를 부르고 있었지만 손님은 거의 없었다. 방학이고 토요일이었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이미 패스트푸드와 인스탄트 식품에 길들여진 젊은 친구들에게 80년대식 간판과 자극적 문장은 이미 불어 버린 라면과 같았을 것이다.

그 옆으로 기차 칸이 모아진 것처럼 일자로 뻗은 집과 판자로 만든 대문이 여러 개 있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어지러워진다. 태반의 사람들이 시멘트의 모래궁전에 머물고 있는데 아직 여기까지 누각이 들어서지는 못했음이 오히려 숙연해 지는 것이다.

그렇게 회색의 공간을 걷는 행사가 끝나고 완전히 비워진 땅 남광주역에 들어섰다. 숨쉴공간 조차 부족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멀구슬나무 한 그루에 달린 열매들이 마치 경전선 열차를 타고 이 길을 갔던 수많은 이들의 열망을 담고 있는 연등처럼 아롱거렸다.
그 연등의 행렬이 도심속의 푸른 길로, 공공미술을 통해 광주사람들의 의와 예의 밑거름으로 자리잡길 바라며 유목의 하루를 남광주시장의 국밥과 막걸리로 마감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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