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녘의 '지역문화의 해'
황혼녘의 '지역문화의 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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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001년을 '지역문화의 해'로 선포하였다. 그동안 사회의 모든 분야가 서울에만 집중하여 발전해온 중앙 집중적 형태로 말미암아 중앙과 지역의 문화적 격차가 날로 깊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역의 열악한 문화적 현실을 해소하려고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프로파간다식 선언들은 본래 취지와는 달리 충분한 여유와 고민에서 나온 대안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으며 지극히 관성적인 작풍이라는 점이다. 1999년을 '문화유산의 해', 2000년은 '새로운 예술의 해' 등등...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자 했던 '지역문화의 해' 사업이 성공을 거두려고 했으면 적어도 상식적인 차원에서 전제되어야 할 요소가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올해의 사업을 기획하는 첫 단계에서부터 단추를 잘못 끼우기 시작했으며 발상의 전환이 없었다.

우선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지방자치단체들에게 '지역문화의 해'에 걸맞는 사업을 기획할 시간적 여유를 주었어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급조된 느낌이었다. 또한 지역별로 아무런 예산도 지원해주지 않은 채 사업안을 중앙차원에서만 받아 진행을 해왔다. 즉 말은 '지역문화의 해'이지만 사업의 주도권과 예산은 중앙에서 틀어쥔 채 문화적으로 소외된 변방인들에게 시혜(?)를 베풀겠다는 매우 훌륭한 발상이 깔려 있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얼마 전 뉴스에 남아도는 쌀을 소비하기 위해 시청직원들이 "아침밥 먹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라는 보도를 접하면서 아직도 관가에서는 '새마을 운동'식의 운동(?)을 벌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우스운 것은 이것을 보도자료로 낸 측과 남아도는 쌀을 소비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시의성 있는 뉴스거리인냥 보도하는 구태의연한 행태였다. 표어와 슬로우건, 포스터 등 구호의 나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개인적 차원의 습성이나 취향, 도덕의 문제까지 표어와 구호로 계몽(?)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들은 우리시대에 끝나야 한다는 염원을 했었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서 '지역문화의 해'와 관련하여 우리지역의 문화영역에서 가장 먼저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관료중심적인 문화행정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시민사회의 역량이 강화되는 90년대 이후 수많은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에 의해 우리 사회의 다양한 사회적 의제에 대해 비판과 대안이 제시되어져 왔다.

문화영역에서도 그 예외는 아닌데, 무엇보다도 지역의 문화적 공공성의 핵심적인 문제점은 전문성을 결여한 관료중심 문화행정의 문제(문화적 공공부문의 관료주의화)와 문화민주주의의 원칙을 결여한 편협한 전문가 중심주의의 문제(문화적 공공영역의 폐쇄성과 비민주성)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번 광주시의 행정사무감사에서 지적되었듯이, 문화산업단지지정 이후 의욕에 찬 첫 출발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던 구KBS의 '영상예술센터'의 개원이 요원해지게 생겼다. 왜냐하면 당초 총 25억의 사업비로 건물보수비 10억 내외, 장비구입 15억 범위에서 11월 개원 목표였지만 건물 보수비용만 20억이 넘게 들어가게 되어 내년 4월 완공도 보장할 수 없게 되었다. 사업계획 이전에 최소한 건물진단을 미리 했었다면, 전형적인 문화적 공공부문의 관료주의화 폐해처럼 보이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이번 주에 설치완료 될 예정인 금남로 '조각의 거리' 조성사업은 문화적 공공영역의 폐쇄성과 비민주성의 전형적인 결과물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지난 연말부터 '조각의 거리' 조성계획에 대해 문화진영에서는 동구청에 토론회나 공청회, 설문조사 등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관심 있는 언론에서는 추진위원회가 좀 더 사업을 공론화하여 역량있는 작가들의 참여와 함께 조각의 거리가 금남로의 역사성을 되살릴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촉구하였다.

일단 작품자체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작가들을 추천하고 선정하는 '추진소위원회'의 위원들이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는 - 이들 작품은 이미 금남로에 최소 2점에서 6점이 건축법 1% 덕분에 진열되어 있다. 물론 작품의 최종 선정위원들은 따로 있었지만 - 즉 자신이 자신을 추천하고 선정하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소한 이것만은 피했어야 할 업계 예의(?)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현재 지역문화의 현주소이다. 비교적 우리보다 문화적으로 앞서가고 있는 프랑스나 일본의 문화정책 기조는 '관이나 일부 소수의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문화전문가가 함께 주도한다는 것이며 관은 이를 지원한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우리의 문화영역에서도 공공성과 민주성의 원리에 따라 공개적 접근(public access) 이 누구든지 가능한 방식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며, 문화의 향유자 주권을 강화하고 참여와 개입의 문화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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