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돌보는 그 자연스러움-담양 대전 여름이네집
나누고 돌보는 그 자연스러움-담양 대전 여름이네집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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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나무 집이라고 했다. 작년 가을, 담양에 계시는 분으로부터 이곳을 소개받을 때 그렇게 들었다. 봄이면 집 뒤 앵두나무 가득 열매가 열리는데 그때가 되면 좋은 사람들 모여 잔치를 벌이자고... 앵두잔치라... 나무 밑에 앉아 앵두에 취하고 술 한잔에 취해 사람들과 이야기한다. 생각만 해도 멋졌다.

모름지기 잔치라는 것이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이 즐거워해야 할 터인데, 지금까지의 잔치는 즐기는 사람 따로, 준비하는 사람 따로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렇게 자연 안에 안기는 잔치는 모두가 즐거울 터. 바로 '자연스러움'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앵두나무 집에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나는 궁금했다. 그렇게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들었던 답변은 이렇다. '끊임없이 삶(생존의 의미에 더 가까운...)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도시의 소비주체 자리 박차고 나와
자립적 삶을 꿈 꾸다


환경이니 생태니 대안이니 하는 다소 뜬구름 잡는(말하자면 비현실적인...) 생각만 하던 나에게 '생존'이라는 말은 생소했다. 아니 어쩌면 '생존'이라는 단어가 갖는 '치열함'에 지레 겁먹었는지도 모른다. 잔뜩 긴장했다. 그곳을 처음 찾아갔던 1년이 조금 넘는 시간 전에 그랬다. 나 같이 다소 붕 뜨고 안이하게 살아온 사람이 가면 안될 곳 같았다.

그런 그곳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 너무도 뜻밖의 모습에 놀랐다. 앳되고 유순하게 생긴 안주인이 있었고 아이들이 뛰어 놀고 있었고, 마루에 놓아둔 오디오에서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 엄숙하게 생긴 사람을 생각했었는데... 그곳은 너무도 편안하고 친근했다. 아이들과 음악. 그 뒤로도 그 집에는 늘 그것이 함께 했다.

그 뒤로는 '여름이네 집'이라고 불렀다. 여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인 딸아이 이름이다. '여름'이 순 우리말로 열매라는 뜻도 있듯, 이 집에는 열매가 많다. 봄이면 앵두, 매실. 가을이면 감과 은행으로 가득하다. 어떻게 열매 많은 집에 살 줄 알고 아이 이름을 여름이라 지었을까. 뜬금 없이 찾아가도 '왜 왔느냐, 무슨 일 있느냐' 묻지 않는다.

'왔어? 뭐해? 얼른 들어와. 밥 먹었어?' 안주인인 박훤희(38)님은 늘 그렇게 맞아준다. 언니 같다. 늘 천천히 차분하게 말하고, 하하하 시원하게 웃는... 가슴 넓은 큰언니. 그 모습에서는 과거 전력이 믿어지지 않는다. 대학시절, 생각 없이 살았던 나는 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게는 고개를 숙인다.

앵두 매실 감 은행...이웃과 나누는 삶

가슴 한켠의 빚진 마음 때문이리라. 그러면서 나와는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도 갖는다. 그 '뭔가 다름'은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강직하거나 외곬수적이거나, 자기 주장이 강하거나 부글부글 열정이 있거나... 내가 본 그 이에게는 따뜻함이 있다. 어떤 말도, 어떤 사람도 다 받아줄 것 같은 푸근함.

80년대 그 암울하던 때, 지역의 진보단체인 '기독교청년회'의 창립멤버이고 위장취업으로 노동운동을 했던 전력은 치열함만으로는 되지 않았으리라. 세상을 향한 따뜻한 눈, 사람을 보는 포근한 마음이 있어야만 가능했을 터. 그는 그 따뜻함으로 세상을 감싸 안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한 시골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사람을 맞으며 또 그들과 나누며 살고 있다.

지금 그이의 가장 큰 일 중의 하나가 '풍물'이다. 기독교청년회 시절, 문화분과의 풍물패활동을 하면서 만난 장구가 지금까지 그와 함께 하고 있다. 3년 전, 광주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가면서 담양 대전면을 선택한 것도 선배가 있는 풍물팀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전 여성 풍물패. 담양의 여러 행사에 빠지지 않는 내노라는 팀이 되었다. 풍물패의 활동으로 짧은 시간에 이웃과 함께 되었다.

농사는 짓지 않을지라도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큰 의미이고 운동인가


그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말에 박훤희님은 펄펄 뛰었다. 그동안 한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단다. 몸만 시골에 살뿐, 농사도 안 짓고 그나마 있는 텃밭도 엉망이어서 부끄럽다며... 그렇다. 농사꾼은 아니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의 귀농자가 아닐 수 있다. 도시에서의 소비주체 자리를 박차고 나와 자립적 삶을 꿈꾸는 것, 그리고 사람들과 나누며 함께 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큰 의미이고 운동인가. 거창한 프로그램이나 계획적인 행사를 여는 것이 아닌, 그냥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살고 싶단다. 나누고 돌보는 그 좋은 미덕이 '여름이네 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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