캬, 우리술맛을 어찌 말로 설명하리
캬, 우리술맛을 어찌 말로 설명하리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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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술 찾아 1년반…'풍경이 있는 우리술 기행' 펴낸 허시명씨

잡지사 기자 생활을 하다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며 숨쉬고 싶다는 생각에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 전국을 밟아대기 시작한 허시명씨(41).
그는 지난 1년 반동안 술에 취하고 사람에 취하고 경치에 취하고 싶어서 쉴새없이 발길을 재촉했다. 그리고 얻어낸 결론 하나. 물 따라 자연 따라 술맛도 다르다는 것. 이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 그는 책 하나를 펴냈다. '풍경이 있는 우리술 기행'.

우리술을 찾아 나선 길 위에서 허씨는 "술을 마시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 부어왔는가, 우리 술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날들이 허무하고 무심하게 여겨졌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그에게 우리술이 마치 고목처럼 오랜 연륜을 지닌 하나의 온전한 생명이자 존재로 다가왔단다.

술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 다니는 것 자체가 업이었던 그를 부러워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같이 가자고 따라나서는 사람들까지 있었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술이 좋아 떠난 여행이 그냥 취함 그 자체로 머물진 않았다.

자동화된 대형주류장 아니라
첩첩산골 목술걸고, 가문 걸고
정성으로 술빚는 장인들에 감동


"술이라는 것이 컴퓨터를 작동하는 2진법의 체계가 아니다. 아무리 일러준다고 해도, 그리고 그대로 따라 한다고 해도 똑같은 술이 되지 않는다"며 송화백일주를 빚던 벽암 스님의 말처럼 그는 전국 곳곳에서 매번 다른 맛, 빛깔의 우리술 40여가지를 만났다.

"소주·맥주와 무슨 차이가 있냐구요?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오미 그 이상을 자극하는 술이라고 말하면 이해가 될까요?" 우리술을 말로 표현하는데는 기자생활까지 했던 그도 꽤 어려운 일인가 보다. "달콤쌉쌀한 맛, 시큼새큼한 맛. 맛과 빛깔에 도취되게 만들면서도 취할려 하면 사람을 제어시켜주는 지혜로움까지 곁들인 우리술"에 그는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그는 담양 댓잎술을 잊지 못한다. 여지껏 우리 술을 맛보면서 색깔에 홀려본 적이 없다는 그가 댓잎술 빛깔에 잎을 다물지 못했다. "누룩과 쌀로 빚은 곡주는 노르스름하고, 꽃술은 불그레하고, 증류 소주는 투명했다 그런데 댓잎술은 연초록이었다". 마치 에메랄드 빛과도 흡사하단다. "정성과 장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술은 하나의 작품이며 예술이다"고 예찬할 정도다.

그는 시 속에서나 있는 줄 알았던 술 익는 마을들을 돌아다니면서 술 빚는 장인들을 만났다. 그는 목숨 걸고 누룩 딛던 마을을 들르기도 하고 가문의 명예를 위해 술을 빚는 사람, 빚은 술이 아까워 팔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만났다. 심지어 아홉 대문 걸어 잠그고 목욕재계하고, 전화도 받지 않는 등 까다로운 절차 끝에 우리술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봤다.

그는 "고목에서 돋아나는 새순처럼, 뿌리를 추적할 수 없는 죽순처럼 창창히 자라 오르고 있는 우리 술을 만났다"고 말한다.

"우리술맛 지켜줄 애주가들 나서시오"

그는 이번 여행을 통해 조그마한 바램도 생겼다. "술도가가 영세해서 사람들이 많이 몰라요" 때문에 그 규모는 작더라도 많은 애호가들이 생겨나 우리술을 찾아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소주나 맥주처럼 자동화된 대형주류를 지향하기 보다 자기 정성을 담을 만한 그릇이 마련되길 그는 바라고 있다.

또, "각 일반음식점의 '특별메뉴'처럼 술집에서도 그 지방의 색깔을 맛볼 수 있는, 주인이 손님에게 한번쯤 권할 수 있는 술을 마련된다면 더 없이 술맛 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예전엔 술 한잔에도 금새 얼굴이 벌개지던 그가 술꾼이 다됐다. 주종을 가리지 않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호주머니 사정 따지지 않고 마시는 사람이 진정한 술꾼이라는 것도 알았다. 무엇보다 "양보다 충분히 취하고 마음으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정도가 각자의 주도"라고 그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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