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한반도자화상, 들불야학
80년대 한반도자화상, 들불야학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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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야학은 1978년 7월 23일, 광주시 서구 광천동성당 교리실에서 창설돼 80년 광주항쟁을 맞기까지 3기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78년 창설 3기 졸업생까지 배출
박기순 윤상원 등 강학들 헌신적 활동


1기 강학은 박기순(사학과 3년), 임낙평(독문과 1년), 신영일(국사교육 2년), 나상진(공대 3년), 김경옥(교육학 3년) 등 대부분 전남대학교 학생들과 서울에서 야학교사 경험이 있었던 전복길(서울대), 최기혁(외국어대), 김영철(서울대) 등 광주출신 대학생들이었다.

광주공단이 위치한 광천동 한가운데에는 한 가구 6평짜리 3층 공동연립아파트 3개 동으로 구성된 "광천시민아파트"라는 서민주거단지가 있었다. 들불야학은 광천천주교 교리실 외에 시민아파트의 방을 사글세로 빌려서 2·3학년 교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70년대 후반은 유신독재 정권말기로 탄압이 극심했고, 이에 학생운동은 70년대 초반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 분신투쟁 이후 추상적인 민주화 운동의 양상을 벗어나 현장(노동. 농촌)론의 뿌리를 내리는 모색의 시기였다. 들불야학도 그 흐름 속에 있었다.

80년 투사회보 제작 등 항쟁 중심에

80년 5월 항쟁이 발발했다. 5월 항쟁동안 들불야학 학생과 강학들은 '투사회보'를 제작 배포하고 '시민 궐기대회'를 조직하였다. 그 성과는 죽음을 각오한 "사수항쟁"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투쟁에 임한 윤상원 등이 주도한 5월 25일 밤 '광주시민 투쟁위원회'를 조직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학팀의 주축이었던 박기순(1기 강학, 전남대 학생, 78년 노동운동중 사망), 윤상원(대표 강학. 78년 전남대정외과 졸. 항쟁 지도부. 5월27일 도청총격 사망), 박관현(3기 강학, 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 82년 광주교도소에서 단식투쟁 중 사망), 신영일(1기 강학. 전남대국사교육과 77학번, 82년 교도소 구금중 단식투쟁. 석방후 88년 사망), 박효선(2기 강학. 전남대 국문과 졸업, 당시 국어교사, 98년 사망)등이 민주화 운동과정에서 사망하는 비운이었다.

들불야학은 80년 5월 항쟁이후 강학들의 자취방을 전전하며 겨우 명맥만 유지하다가 1980년 후반기에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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