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 고 소시랑언 으지다가 두그라
아가 고 소시랑언 으지다가 두그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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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말 사잇길-'으지'>

'으지'라는 말이 '아리'라는 말과 붙어서 '으지아리'로 쓰일 때에는 어제의 뜻을 지니지만, 시간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장소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흔히 전라도에서는 비바람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장소를 '으지'라고 하는데, 이때의 '으지'는 어제를 뜻하는 '으지'와 발음이나 표기는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그 뜻은 전혀 다르다.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닌 곳. 혹은 안이면서 바깥인 공간. 안과 밖이 섞이는 곳이 으지인 셈이다. 안과 밖이 드나들며 숨쉬는 곳. 으지는 안의 숨통이고 바깥의 쉼터이다. 예를 들면 처마 밑이나 토방 같은 장소가 으지에 속하는데, 집이라는 공간을 벗어나면, 무슨 나무 밑이나 바위 아래도 으지에 들어간다.

바깥도 아니면서 안도 아닌
처마 밑이나 토방같은 장소 '으지'


그래서 으지는 비바람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장소가 아니라, 비가 내려 조금 젖더라도 피해가 없을만한 곳. 바람이 불더라도 날려가지 않을만한 장소의 총칭이다.

여름날 보리를 널어둔 덕석을 두고 들에 나가면, 어머니는 늘 하늘을 보면서 일기예보를 하였다.
'구름이 호계짝에서 몰려와가꼬, 용두봉짝으로 들어가먼 비가 온다'는 어머니의 말은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그래서 호계 쪽에서 몰려온 먹구름이 용두봉 쪽으로 몰려가면 들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부산해졌다.

그런 날이면 우리는 쇠스랑으로 논을 고르다가도, 꼴을 베다가도, 달음박질로 비설거지를 하러 가곤 하였다. 아무래도 달리기는 우리가 빨랐던 탓에 비설거지를 끝낼 무렵에야 도착한 어머니는 우리가 미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단속하면서, 이미 젖은 쇠스랑을 가리키며, '아가 고 소시랑은 으지다가 두그라' 그랬다.

'으지'도 으지이지만, 우리네 살림집들은 참으로 다양한 공간들이 공존하였다. 방과 간, 꽝과 래, 이런 식의 어미가 붙은 것만 해도 다 나열하기가 힘들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면 방만 하여도 안방, 건넛방, 갓방, 아랫방, 정개방, 소죽방, 가운뎃방, 머슴방 등이 있었고, 굳이 덧붙이면 토방이라는 방도 있었다. (토방을 방으로 쳤던 사실은 재미있다.)

간이라는 어미가 붙은 말로는 곳간, 곡간, 마굿간, 뒷간 등이 있었고 장꽝이나 감자꽝 이라는 말은 '꽝'이라는 어미가 공통이다.

'래'로 끝나는 말에는 물래와 말래가 있는데 표준어에서는 그 둘이 합해져서 마루라는 말이 쓰인다. 말래와 물래는, 둘다 나무판을 깔아서 만든 것이지만, 둘의 구분은 분명하다. 말래는 문안에 있는 공간을 뜻하고 물래는 문 밖의 공간을 뜻하는 것이다.

부언하면 말래는 방과 똑같이 생겼지만 아궁이가 딸리지 않고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는 곳이다. 담양이나 장흥에 가면 정자들이 많은데 그곳에 있는 마루들은 전라도 말로 표현하면 물래인 것이다.

그리고 이 많은 공간을 벗어난 바깥을 전라도에서는 '한데'라고 하는데, '한데'라는 단어는 전라도에서 자주 사용되기는 하지만, 사투리가 아니라 표준말이다. 사전에 올라 있더라도 사투리인 것처럼 생각되는 말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한데'와 '오지다'는 단어가 대표적일 것 같다.

'한데'에 해당되는 장소들은 마당이나 뒤안, 논사밭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밖에 그릇을 놓는 장소로 '살강'이 있었고, 시렁을 뜻하는 '실강'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 나는 살강, 실강이나 오강(요강)이 왜 똑같은 '강'인지 의아했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대흠 시인은 전라도 고향 내음을 더 가까이 전달하기 위해 홈페이지 리장다껌(www.rijang.com)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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