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이 죽으면 나라도 죽어요
농민이 죽으면 나라도 죽어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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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사는 농촌 꿈꾸는 '여성농민운동가' 주향득씨

"우리집이 제법 잘 산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도시 애들과 비교하니까 어찌나 초라하게 느껴지던지…. 시골에서 아무리 잘 살아도 도시 셋방 사는 아이보다는 못하구나". 전남 나주 봉황에서 태어난 주향득(40)씨가 어릴적 광주 초등학교로 전학 왔을때 느꼈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1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주씨는 그 초라함의 원인을 알게됐다. "가톨릭 농민회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것은 사회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된 문제였다"는 것.
평생을 바쳐 농사만 지었으나 그만큼 댓가도 받지 못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지울 수 없었던 주씨는 사회를 바꾸는 농민이 되기로 맘 먹었다.

부채눈덩이 농민에 수매가까지 깎다니…

예나 지금이나 부채에 허덕이는 농민들의 모습은 여전하다는 주씨. 갈수록 농민들에게 무책임해져 가는 정부 때문에 올 여름부터 시작된 농민들의 투쟁은 추운 겨울 문턱에 서 있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농협중앙회가 지역 농협 미곡처리장(RPC)에 '산지가격에 맞춰 자체수매가를 결정'하라는 지시공문을 보낸 것. 이에 농민들은 "정부에서 좀 더 높은 가격으로 농민들 살려줄 생각은 못하고 오히려 가격을 깎고 있는 게 말이 되느냐"며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정부의 나몰라라 하는 태도 때문에 우리 농민들 다 굶어죽게 생겼는데 쌀 생산비라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죠". 그녀는 지금까지 농민운동을 하면서 농민들이 가만 있으면 정부도 절대 움직이지 않는 속성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지난달 서울농협중앙회 셔터 매달려
8시간동안 "쌀값보자" 시위 벌여


그래서 10월 중순 농번기 철 바쁜 일손을 멈추고 여성 농민들과 함께 서울 농협중앙회로 올라갔다. "쌀값 보장 약속을 받아내야죠" 다짐하며 상경했던 주씨는 얼굴 한 번 비추지 않는 윗사람들, 오히려 다른 농민들과의 연대 투쟁을 막기 위해 셔터문을 내려버린 농협측 처사에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가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은 차디찬 셔터였다. 그녀는 그곳에 무려 8시간 동안 매달려 '쌀 생산비 보장'을 외쳤다. "여성 농민들까지 올라가서 그렇게 농성하면 봐줄 줄 알았죠. 하지만 그들은 눈 하나 깜짝 안해요". 주씨는 정부가 농민에 대해 전혀 대안정책이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돌아왔다.
그렇다고 힘이 빠진 것은 아니다. 정부가 냉정할수록 농민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그녀는 여기서 '농민운동'의 희망을 찾는다.

그녀가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현재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부의장을 맡고 있는 주씨는 '여성 농민'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일하고 들어오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집안일 그것도 다 여성들 몫이죠". 이런 여성들이 좀 더 편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주면 좋으련만 심지어 농기계 마저도 남성들 체형에 맞춰져 있다고 주씨는 말한다.

정부가 움직일대까지 계속 투쟁할 겁니다

그러나 후계자나 대표자들이 대부분 남성들이라 여성들의 문제는 언제나 뒷전. 때문에 그녀는 자꾸 움직일 수 밖에 없다.
너무 열심히 일한 탓일까. 80년대 두차례나 구속돼 구치소 생활을 한 주씨는 이것이 계기가 돼 든든한 배우자를 만났다. 현재 전남도에서 '농민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정훈(39) 의원. 하지만 어딜 가나 그녀는 의원 부인보다는 농민운동가로 인정받는다.

"남편을 돕기 위해 나선 일이 아니라 내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을 보면서 피부로 느꼈던 농촌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 일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그녀는 농민들의 아픔을 안고 활동하는만큼 말 한마디, 몸짓 하나가 더욱 절실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현실에 부딪쳐 힘들 때마다 그녀를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도 역시 농민들이기에 그녀는 이 길을 계속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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