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즘과 황수정
테러리즘과 황수정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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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1일 발생한 미국 뉴욕의 테러 사태는 전 세계인을 경악케 했다. 충격과 슬픔 속에서 차츰 의식을 회복한 지금, 세계는 다시 미국의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무자비한 폭격과 보복 공격에 분노와 절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빈 라덴의 사진과 부시의 성난 얼굴이 연일 뉴스에 교차되면서 적과 동지, 선과 악이라는 흑백의 이분법적 논리가 강요되는 사고 구조의 단순성에 우리는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이번 사건은 21세기, 새 밀레니움 시대의 벽두에 그 동안 문명의 탈에 숨겨온 인류의 추악한 잔인성을 적나라하게 그대로 보여 주었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모든 것에 자신의 가치의 절대성만을 주장하는 위험한 우월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자신의 신념, 가치만이 유일한 진리로서 주장하고 강요하는 자들이야말로 바로 현대의 '열린사회의 적들'이다. 왜냐하면 니체의 말처럼 "확신은 사기보다 더 무서운 진리의 적"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사건이 일어나게된 사회적, 역사적 원인을 규명하지 않고, 일어난 현상만을 보고 재단하는 맹목성이 또한 그들의 큰 덕목(?)이다. 이들은 그 자체로 윤리적 현상이란 존재하지 않고 단지 현상에 대한 윤리적 해석만이 있을 따름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11월 13일 드라마 '허준'에서 '예진 아씨'로 열연한 인기 탤런트 황 수정이 히로뽕을 투여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이른바 '뽕수정'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질타는 우리 사회가 나와 '다른 자'에 대한 관용이 얼마나 결여되어 있으며 단순한 흑백 논리에 지배되는 획일화된 사회인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물론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경계를 넘었다는 점에서 비난받아야 마땅하겠지만, 단 한번의 실수로 '청순한 천사'가 하루아침에 '마녀'로 매도되는 현실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 본인에게 한번의 소명기회도, 조그만 변명의 여지도 용납하지 못하는 도덕주의자들의 엄숙주의가 그 동안 우리의 정치사에서 이념이 다른 적을 죽이기 위해 얼마나 쉽게 남용되어 왔던가? 30년 군사 독재가 남긴 유산 가운데 가장 큰 폐해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러한 단순 흑백논리이다.

11월 21일 전국 국, 공립 인문 대학장들이 서울대에 모여 인문학 발전 대책을 위한 건의문을 채택했다. '인문학의 제주 선언(1998)'에 이은 이번 건의문의 성격은 인문학의 고사 위기에 대한 인문학자들의 거의 단말마적인 비명에 가깝다.

인문학의 생명은 단일함보다는 다양성, 단순 명쾌한 논리보다는 복잡한 가능성을 추구하며, 하나의 해답보다는 끊임없는 물음의 연속성 속에 있다.

이러한 성찰과 반성의 학문은 무엇보다 많은 시간과 의사 소통의 인내를 요구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실용주의적 '속도전'은 이러한 인문학의 비효율적 시간 개념을 거부하고 단일하고 즉각적인 정보 전달을 위주로 하며, 이에 대한 성찰과 반성의 틈새를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강요된 세계화'시대에 떠밀려 살고 있는 현재, 우리는 모든 사고와 가치의 척도를 단일한 '미국화'에 두고 있는 듯하다. '영어 지상주의' 또는 '영어 유일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의 논리가 바로 그렇다.

영어만이 제일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모든 미국적인 것, 영어는 선이요, 그 외의 다른 나라의 문화나 언어를 습득하는 일은 쓸모 없는 낭비라고 본다. 그들의 이러한 단세포적인 천박한 사고가 불러올 위험과 재앙을 생각하면 섬뜩하기만 하다.

교육은 현재에 대한 투자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단기 이익을 바라는 근시안적인 시장 논리로는 백년 대계의 교육정책을 수립할 수 없다. 이러한 명백한 사실을 망각한 교육 관료들의 자기 과시적인 실험주의에 인문학은 더욱 형해화 되어가고 있다.

일찍이 '정직'으로 60년대를 관통한 시인 김수영은 "시는 자유다"라고 갈파하였다. 이는 다만 시 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의 근간에 필수적인 상상력의 자유와 다양성의 강조를 의미한다.

문화의 생명력은 유일함이나 획일적인 단일함에 있는 것이 아니고, 상이한 여러 문화의 복잡한 다양성에 있다. 단일함 속의 다양성, 다양성 속의 단일함이라는 변증법적 사고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지혜가 아쉽다.

오늘날을 '인문학의 위기'의 시대로 규정하는 원인 중에 하나는 바로 우리 사회에 자기와 다른 생각이나 신념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관용과 열린 대화의 자세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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