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없이는 존재도 없는 거야
언어 없이는 존재도 없는 거야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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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북구문화아카데미 강단에 선 고은 시인>

"난 스승을 따라가는 길보다 친구와 함께 걸어가는 길이 좋아"

최근 스승 서정주 시인을 비판하고 나서 문학계에 큰 파장을 몰고 왔던 고은(69) 시인. 그는 "스승은 과거일 뿐, 친구는 현재이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있어 좋다"며 지난 21일 '북구문화아카데미' 강연의 서두를 열었다.

이 날 그가 '친구'들에게 말하고자 했던 것은 통일이 아닌 '언어'였다. 언어 없이는 조국도 존재할 수 없다는 그는 "인간은 언어를 통해 비로소 인간이 되고, 민족이나 역사도 마찬가지"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던 중 그는 갑자기 국민학교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1학년 입학하던 때 우린 조선어 안 배웠어. 일본어가 국어가 된 상태였지" 그가 어린 시절 추억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국권을 잃었을 때 주체를 대행해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바로 언어"라는 사실이다.

나라는 빼앗겼지만 조선어는 남아있었기에 우리 민족은 힘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조선어를 없애고 이름까지 창씨개명 하면서 우리 민족은 순식간에 힘을 잃어버렸다고.

"언어가 없어지면 다 끝나는 거야" 그 절실함만큼 우리 민족은 당시 모진 고난과 억압을 당하면서도 조선어를 지키려 발버둥쳤다. 그런데 요즘은 자진해서 영어를 모국어처럼 쓰고 있다는 것에 그는 무척 화가 난단다. "조상들이 고생해서 만든 문화 유산이 다 없어지게 생겼어. 우린 영어 제국주의에 우리 언어를 잃어가고 있는 거야. 내가 보기엔 50년 안에 세계 언어들이 다 없어지게 생겼다니까".

일제때 국권 잃어도 살아낼 수 있었던 건
언어가 있었기 때문이야.
그러나 창씨 개명후 모든 게 끝났버렸지
요즘 '영어의 모국어화' 무척 화가 나


"언어를 왜 모국어라고 하는 줄 알아?" 그는 모국어에 '육감적'인 느낌이 있다고 말한다. 엄마의 젖을 빨면서 엄마의 입모양을 보면서 아이는 언어를 익히게 되는 것이라고, 그 느낌이 모국어 안에 베어있다고.

그러나 "요즘은 몸매 생각하면서 젖도 안주고 우유 주는데 '엄마 품'이 뭔줄이나 알겠어?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엄마와 독립적인 관계가 되지"라고 현실을 꼬집는 고씨는 그만큼 모국어를 지켜야한다는 절실함도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래도 "언어 없이는 존재도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 고은 시인의 변함없는 생각이다. "언어는 존재의 고향이고 근원의 생명기호야" 때문에 그는 이날 예정되었던 '통일시대를 향한 우리 민족의 진로'를 제쳐두고 '언어'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언어에는 조상과 자손, 그리고 세계의 꿈이 들어있어

"스승 100만명보다 친구 10명이 좋아. 함께 고민하고 함께 방황하면 또 해결해 나갈 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그가 통일을 이룰 친구들과 먼저 해결할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세계 3천950종 언어 중의 하나인 '한국어'를 이 땅에서 자연 그대로 지켜내는 것이다.

"우리 언어에는 조상, 자손 그리고 세계의 꿈이 들어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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