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힌 돌을 향한 굴러온 돌의 가르침
박힌 돌을 향한 굴러온 돌의 가르침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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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의 저자 현각스님.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일화.
그는 평소 제자들과 그리스 시민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고 다녔다. 하루는 그의 제자 중 하나가 "그럼 선생님은 자신을 알고 계십니까"하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난 모른다. 그러나 내가 나를 모른다는 사실은 안다."

나를 안다는 것. 그것은 곧 깨달음이고 진리다. 헌데 이 값진 말은 비단 서양 이야기만은 아니다. 돌아보면 우리나라의 깊은 불교전통에서도 이와 같은 고매한 말씀과 가르침이 있어왔다.

단지 문명을 앞세운 서양은 세계로 퍼뜨렸고, 우리는 수많은 절집들의 창건, 재건, 복건이라는 고통스런 역사와 근대화의 미명하에 산 속에서만 전해졌다는 차이가 있을 뿐.

한국불교전통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일류대학도, 세계 최고 부자나라도 버리고 한국을 찾아 머리 깎고 중이 된 현각스님(37. 미국본명 폴 뮌젠. 현정사 주지).

그가 유명세를 탄 건 단지 외국인 스님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자라 미국의 명문 예일대에서 철학과 문학을, 이어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하기도 한 수재다. 90년 미국에서 숭산스님을 처음 만난 뒤 92년엔 아예 한국으로 건너와 출가를 하고, 이후 세계에 한국불교를 알리기 위해 한국인 스승의 설법집을 영문번역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엔 깨달음을 찾아 떠나온 자기 삶의 과정을 담은 책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열림원)'를 내놓아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바 있다. 내친김에 그는 지난 4월엔 경북 영주의 현정사라는 새로 지은 절집의 초대주지 자리에까지 올랐다.

깨달음을 찾아 학벌과 고국을 떠나
머리깎고 중이된 푸른눈의 이방인
광주에서 법회 열어


지난 17일 그가 광주를 찾았다. 광주전남대한불교청년회 등의 초청으로 광주은행 3층 대강당에서 불교신자와 시민들이 300여 객석을 가득 매운 가운데 그의 법회가 열렸다.

풀먹인 회색빛 가사에 황토색 장삼, 그리고 검정고무신까지 영락없는 스님이다. 특유의 영어식 억양과 말이 빨라지면 알아듣기 어려운 발음이 섞이긴 했지만 의사전달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는 종교의 폐해를 비판하고 동시에 바른 종교를 통해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는 00신을 믿는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신을 믿는 바로 그 '나'는 도대체 누굽니까. 그리고 그 '나'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요. 이웃을 사랑하라는 많은 가르침이 있었지만 그 사랑의 주체인 나에 대해서는 아무도 답을 해주지 못했어요.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그에게 있어 종교는 '참된 나(眞我)'를 찾는 일, 즉 마음공부를 위한 방법이었다. 깊은 참선을 통해 머릿속의 잡념을 버리고 자신을 최대한 객관화해서 보는 것. 그런 측면에서 참선을 중요시하는 한국의 선불교는 태국이나 일본, 티벳 등의 불교에 비해 자신을 찾는 지름길이라고 그는 평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주머니에 백만불을 담고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어요. 자기 안에 백만불이 있다는 걸 알아야해요. 그런 사람은 깨달은 사람이예요."

"올바른 종교는 참된 나를 찾는 길"
"한국선불교는 참선전통 살아있어"


그의 법회 내용은 진지했지만 형식은 자유롭고 웃음도 끊이지 않았다. 강연 중 객석에서 전화벨이 울리면 웃으며 "전화받으세요"라거나, 아기가 울면 "죄송합니다, 더 재밌게 해드리겠습니다"며 재치를 발휘하기도 했다.

긴팔을 휘저으며 설명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미국인 스타일이지만, 쉴새없이 이어지는 말들을 쏟아 낼 때면 마치 TV프로그램의 '수다맨'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한시간의 강연이 끈난 뒤 다시 한 시간동안 이어진 문답시간. 그는 선문답을 하는지 아니면 소통이 잘 안돼서 그런 것인지 모를 야릇한 답변을 내놓곤 했다.

한 청중이 우리나라에서 돼지나 소, 개를 잡는데 그 차이가 뭐라고 보느냐고 묻자, 그는 각 동물들의 흉내를 내면서 '죽을 때 내는 소리가 다릅니다'라고 간단히 답했다. 우주에 존재하는 에너지는 어디서 오느냐는 질문엔 '당신 입에서 왔다'고 답했으며, 미래 종교는 우주적 종교라는데 불교는 여기서 어느 위치쯤 인가하고 묻자 '난 모르겠다'고 답했다.

자유롭고 의미있는 현각스님의 강연 끝은
외국인 통해 깨닫는 부끄러운 자화상


두 시간을 조금 넘겨서야 현각스님의 강연은 끝났다. 강연을 듣는 동안 청중들의 태도는 진지했고, 가끔 현각스님의 말에 감탄사를 자아내기도 했다.

90년대 이후 미국와 유럽에서 불교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현각스님은 그 이유가 배타적이고 맹목적인 종교에 질린 '종교난민'들이, 특히 과학적이고 참선의 경험을 중시하는 한국불교에 많은 매력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그가 했던 이야기들은 웬만한 신자들이면 이미 알고 있는 불교의 가르침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현각스님은 사람이 찾아야할 '참된 나' 속에 '옛 것'으로 진부하게 치부했던 우리의 전통을 포함하고 있다고 자신의 몸말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제것을 두고 남의 떡만 크게 보다가 이방인의 말을 듣고서야 무릎 탁 치는 한국인에 대해 푸른 눈의 이 스님은 뭐라고 했을까. "차나 한잔 마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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