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내소사 새벽 산사...그 청정함
늦가을 내소사 새벽 산사...그 청정함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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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이라는 공간에 대해 사람들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고 있다.
특히 어릴적 절에 갔다 만난 사천왕의 우락부락한 모습이나, 단청과 장엄의 색감이 주는 화려한 채색들이 심란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그것이 절의 대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여행코스에 절이 들어가면 그 놈의 절에 왜 또 가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는 하나도 하찮은 것들이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절에 한번 가보자.

변산반도에는 대개의 우리 산이 대간과 정맥에 어울려 서 있는 것과 달리 독립되어 우뚝 솟아 있는 변산이 있다.
사람들은 이 산을 그냥 여느 산처럼 생각하지 않고 삼신이 깃들여 산다는 봉래산이라고 이름하였다. 그 산자락에는 백제 시대에 지어졌다고 하는 내소사가 자리잡고 있다.

내소사라는 이름의 내력은 당나라 소정방이 지나간 절이라 해서 이름 붙여졌다고 한 적이 있었지만 요즘은 그 내소사라는 말이 등장한 것이 조선시대 이후라고 해서 말이 주는 상징에 얽매인 해석의 잘못을 고쳐냈다.

우리가 쉽게 주눅 들었던 '순사'라는 말에도 그들이 지녔던 무소불위의 힘이 함께 죄어 들어오는 것처럼 백제땅 사람들에게 소정방은 잊혀지지 않는 원수였으니 말이다.(생각해보라. 조폭마누라에서 신은경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새가 '짭새'라고 하지 않았는가)

하여튼 이 내소사가 다른 절과 달리 두드러진 점은 부처님을 모시는 절집에 민간에서 지내는 당산제가 아직도 스님과 함께 치러지고 있다는 점이 하나요.

대부분의 절이 내세우는 전체적인 조형성과 완결된 아름다움이 이 곳에서는 두가지나 빠졌는데도 여전히 부족함 속에 더한 아름다움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부처님을 모신 대웅보전의 법당안쪽 천장에 하나 빠진 나무토막과 오른쪽 천장에 그려져야할 용과 선녀의 그림이 빠져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옛 사람들은 이런 부족함을 그냥 넘기지 않고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 우리에게 법당을 더 우러러 보게 만들었다.
옛적 법당을 지으려는데 도편수가 된 사람이 삼년동안 나무토막만 자르고 집을 짓지 아니하자 화가난 시자(스님의 심부름을 하는 사미승) 선우가 그 나무토막 하나를 감춰 버렸단다.

한데 나무 깎기를 마친 도편수가 나무를 아무리 세어도 하나가 부족해 큰스님에게 자신은 공덕이 부족해 부처님의 집을 지을 수 없다고 포기하려 했단다.
이에 놀란 시자가 감추어놓은 나무를 얼른 내놓았지만 도편수는 그 토막을 쓰지 않고 그대로 집을 지어 천장에 나무 하나가 비었다는 얘기다.

또한 법당 내부의 단청에서 양쪽으로 그려져야 할 용과 선녀의 그림중 오른쪽이 빠진 것도 이 말썽 꾸러기(얘기를 듣다보면 자꾸 운주사를 미완의 공사로 끝마치게 한 시자와 중첩된다) 선우가 단청을 그리는 것을 100날 동안 보지 말라고 하는데 너무 조용해서 99일째 되는 날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문틈으로 내어다 보고 말아서 그림을 그리던 새(관음보살의 화현)가 일을 마치지 못하고 후다닥 날아가 버려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 한다.

이런 절에 얽힌 얘기는 그 절이 가진 신비함을 더욱 증폭시키기도 하지만 그런 인간의 말이 담아낸 구조보다 더욱 신비한 것은 바로 이 절의 입구에서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이 주는 전이공간의 미학이다.

비싼 주차료 입장료 피할겸
이른아침 들른 전나무 숲길
그 향은 내 몸을 감싸고
세상의 티끌 사라짐을 느끼리...


비싼 주차료와 입장료를 피할겸 이른 아침 내소사에 들어서면 매표소 바로 곁에 할머니 당산이 서 있고, 마음을 하나로 합해 일주문을 들어서면 뾰족이 하늘을 찌르고 선 반듯한 전나무 숲의 터널을 만난다.

족히 600미터쯤 되는 그 길을 걷다보면 전나무의 향이 몸안 곳곳을 더욱 청신하게 만들어 준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그 길은 모처럼 사람과 자연이 어울린 길을 만난 즐거움까지 함께 선물해 주는 것이다.

이어서 만나게 되는 붉은 단풍나무의 향연과 홀로 죽어가며 노란 단풍을 피워낸 노거수를 만나면 마치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처럼 반갑기 그지없다.
그쯤해서 눈을 들어 절을 감싸고 있는 변산의 관음봉을 바라보면 세상의 띠끌 하나도 내 몸에서 사라져 갔음을 느끼게 된다. 너무나 소쇄한 내소사의 아침은 절집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 보면 내 몸 깊숙이 자리잡고 있음이 절로 느껴진다.

꼭 내소사가 아니어도 좋다. 이 가을 새벽 산사에 한번 떠나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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