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월드컵, 컨셉이 관건이다
광주월드컵, 컨셉이 관건이다
  • 김호균
  • 승인 2001.1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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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월드컵"이라고 했을 때 문화는 단순히 수식어로 존재하는 장치가 아니라 월드컵을 통해 또 다른 무엇을 얻기 위해 취한 무기라는 점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80년대 해태가 뛰던 프로야구경기장에서는 언제라도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핏발선 눈동자의 광주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광주 월드컵경기장에 들어서면서 나는 이미 옛 그림이 되어버린 야구장의 풍경을 떠올리면서도 '이제는 단순히 이루지 못한 욕망의 배설구'로서 스포츠게임이 존재해서는 안되는 시기임을 생각해보았다.

무언가 더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목적하에 이러한 경기가 치러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았던 것이다. 치르기 위한 방어적 개념의 행사가 아니라 정확한 목표를 가지고 무언가를 얻어내는 행사로 월드컵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이다.

생각의 꼬리를 흔들듯 화려한 경기장의 불빛이 밝혀지면서 광주월드컵 경기장 개장기념 문화행사가 시작되었다. '광주의 빛, 세계의 평화'를 주제로 펼친 마스게임이었는데 "모든 빛이 광주에서 태어나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빛의 이미지로 지역의 이미지를 업(up)하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2002월드컵은 문화월드컵을 지향하고 있다. 문화를 접목한 스포츠마케팅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하지만 '문화월드컵'이라고 했을 때 문화는 단순히 수식어로 존재하는 장치가 아니라 월드컵을 통해 또 다른 무엇을 얻기 위해 취한 무기라는 점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문화가 스포츠 행사를 치장해주는 보조 역할로만 쓰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문화가 어차피 상징적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문화월드컵 속에는 '광주마케팅'의 주요전략이 제대로 설정돼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곧 광주시의 문화정책이 어떤 곳으로 흘러가고 있느냐를 말해주는 것이며, 광주의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번 문화월드컵에서는 광산업의 발전을 부각시킬 것이냐, 인권도시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것이냐, 지역 문화관광의 특수를 노릴 것이냐, 아니면 이러한 제문제를 어떤 고리로 체계적으로 묶어낼 것이냐 하는 전체 컨셉이 동일한 맥락하에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지 부각이든, 경제적 실리든
목표가 정확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남는건 텅빈 운동장뿐


우리처럼 문화월드컵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의 시즈오카현이 추구하는 주요 컨셉은 '감성이 풍부한 인간 만들기와 세계적으로 문화의 향기가 발산되는 고장 만들기'이다. 시즈오카현의 문화정책 뼈대인 문화진흥 목표(goal)는 '신세기 창조'를 위해 풍부한 생활이 실감되는 "감성 풍부한 문화입현(入縣)"의 실현인데 그러한 기본 목표가 월드컵행사에도 그대로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월드컵경기장 개막행사를 보면서 내심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행사 전체에 광주라는 도시의 문화컨셉이 명확하게 들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4만3천여명이 몰린 대호황 속에 치러졌으되, 과연 전체 행사와 동일한 문화적 컨셉을 지닌 국제행사였는지, 월드컵을 통해 광주라는 도시의 '마케팅(수익적 차원의 마케팅만을 말하지는 않는다)'을 얼마나 제대로 해내려고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기획회사에 의해 말 몇 마디로 급조된 컨셉은 행사마다 달라질 수 있을 텐데 만약 그런 식으로 행사마다 적당한 의미부여만 해나간다면 우리가 2002년 광주월드컵을 치르고서도 "몇만명이 관람했다"는 숫자만이 결과물로 남을지 모른다.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목표--그것이 이미지 부각이든 경제적 실리이건--가 정확히 없는 방어적 입장에서 월드컵을 치른다면 그야말로 우리에게 남는 것은 텅 빈 경기장 뿐일지 모른다.

세계적 흐름 속에서 광주의 문화적 마케팅이 정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비교하지 않으려 발버둥쳐도 우리는 일본과 함께 월드컵을 치를 수밖에 없다. 일본의 각 지방도시가 구사하는 전략을 능가하는 문화정책이 정립되어야 하며, 그 길로 매진해야 한다. 행사는 단순히 이벤트 행사의 실무역량이나 테크닉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고, 이를 컨트롤할 수 있는 시의 문화적 입장과 정책이 분명해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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