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말 -'제, 지, 께…'
전라도 말 -'제, 지, 께…'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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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지, 께, 날>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다고 하지만, 모두의 수명이 길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명에 대한 통계가 나오면 자연히 보게 되는데, 언젠가는 정치인, 경제인, 예술가 등 직업별로 평균 수명을 계산해 둔 표를 본 적이 있다.

그 중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당연하다시피 예술가였는데, 그다지 오래 살 것 같지 않게 생각되었던 예술가의 수명이 평균치를 약간 웃돌고 있었다. 나는 마치 내가 평균 이상의 나이를 살 것 같다는 착각 속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

어제·그저께·어끄저께…
지나간 막연한 어떤 날의 풍경이나 사건을 뜻한다


통계란 종교와 유사한 힘이 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실망하고 말았다. 예술가의 수명은 길었지만, 다시 예술가를 쪼개었을 때는 여러 가지의 직업으로 나뉘어지는데, 그 중 문인의 평균 수명이 평균보다 한참 낮았기 때문이다.

하긴 매일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드는데, 어찌 오래 살기를 바라겠는가. 오늘도 원고를 쓰다보니 새벽 세 시가 넘어버렸다. 이 시간쯤이면 헷갈리는 것이 오늘이라는 단어이다. 날짜는 바뀌었지만 왠지 어제가 지속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이 섞여 있는 것 같은 시간. 뜬눈으로 맞이하는 새벽은 늘 그렇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모든 시간이다. 그런데 나는 어려서부터 내일이라는 단어가 한자어인 것이 신경 쓰이곤 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내일'이라는 말에 적확하게 대응하지는 않지만 '하제'라는 고어가 있었다. 전라도에서는 지금도 쓰이는데 '후제'라는 말로 변형되었다. '후제'는 나중이라는 뜻을 지닌다. '하제'라는 말이 한자어의 영향을 받아 '후(後)제'가 되었을 것이다.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말 중 고어의 흔적이 그대로 굳어진 경우가 '어제'라는 단어이다. '제'라는 말은 시간을 가리킨다. '제'라는 말을 사용하여 시간을 표현하는 단어는 많다. '오늘'은 '이제'. 내일은 '하제' 혹은 후제'. '어제'는 그대로 '어제'. '그제'도 그대로이고, 그제의 전날은 '그끄제'이다. 물론 지금은 사용되지 않고 있거나, 뜻이 많이 변형된 말들도 있다.

'오늘'이라는 말은 전라도에서는 '오날'이라고 하였는데, 흔히 '오날'의 '날'이 반복되어 '오날날'이라고 쓰였다. '늘'이나 '날'이나 같은 말이다. '늘'은 '날(아래 아 표기)'에서 왔다. '어제'를 나타내는 말로는 '어지께'나 '어저께'라는 말이 주로 쓰였는데, 그것은 '그저께', '그끄저께'의 영향으로 보여진다.

참고로 전라도에서는 '그제'나 '그끄제'라는 말은 사용되지는 않았고 '그저께'와 '그끄저께'라는 말들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 말들은 표준말이다.

그러나 '어제'를 나타내는 말로 '어지께'나 '어저께'라는 말 외에 '어지'나 '으지'라는 말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제'라는 말 대신에 '아리'라는 말이 사용 되었는데, 흔히 '으지아리'를 붙여서 사용하였다. '으지아리'와 같은 뜻으로 '어끄저께'라는 말도 사용되었는데, 이 말들의 뜻은 '어제나 그제. 혹은 그 전의 어느 때'를 가리킨다.

부언하면, '으지아리'나 '어끄저께'는 지나간 날들 중 막연한 어떤 날, 어떤 풍경이나 사건을 뜻할 때 많이 쓰인다. 하지만 그 단어들이 지닌 과거라는 것은 한 달을 넘어가지 않는다. '제' '지' '께' 는 '날(아래 아 표기)'의 단위에서만 쓰이는 것이다.

이대흠 시인은 전라도 고향 내음을 더 가까이 전달하기 위해 홈페이지 리장다껌(www.rijang.com)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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