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로운 사람 한 둘 있다면...
이무로운 사람 한 둘 있다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0.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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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산세를 닮아있다. 높은 산이 많은 곳에서는 억양이 두드러지고, 평야가 많은 곳에서는 장단이 발달되었다. 그래서 백두대간이 흐르는 강원도와 경상도에서는 말의 고저가 발달하였고, 평야가 많은 전라도 말은 길게 빼고 짧게 끊음에 그 말의 생명이 있다. 그것은 같은 전라도 내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동편제와 서편제를 비교해 보아도 그 특성은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나라 최대 평야라는 호남평야와 나주평야가 있는 전라도 말은 그 산세를 닮아서 어떤 말은 길게 늘어지고 어떤 말은 짧게 발음된다. 낮은 산들이 구불구불 이어지듯 어떤 말은 한 단어가 담배 한 대참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고, 평야 한 가운데 섬처럼 솟은 독산 모양 어떤 단어는 대여섯 마디가 순간에 끝나기도 한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이 문서화된 전라도 말을 읽을 때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가시내가 거짓말맨키로 가불드랑께.' 했을 때의 '거짓말맨키로'는 팔분음표를 사용해야 한다면, '하지 말어야. 염뱅할거시 기냥-' 했을 때의 '기냥-'의 '냥-'은 온음표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평야가 이어지듯 길게 늘어지는 전라도말
조심해 가그라이잉~ 좋음시롱~여긋지롱~
늘어진 말에 가락이 붙고 정이 붙고...
이런 말 쓸 수 있는 친구 몇 있다면 행복하리


가을이면 늘 생각나는 시 중의 하나가 영랑의 '오-메 단풍 들겄네'로 시작하는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라는 시인데, 여기에서 쓰인 '오-메'는 전라도를 대표하는 감탄사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전라도 말에는 감탄사가 발달되어 있는데, 오메를 비롯하여 워메, 아마, 와마, 하마, 아따, 아따메, 아먼, 아따워메, 하이고메, 하이고, 아이, 아이마다 등 셀 수가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오메'라는 감탄사와 뜻은 유사 하지만, 그 의미가 더 강화된 뜻으로 쓰이는 '아따워메'나 '하이고메'라는 단어의 발음에 소요되는 시간은 '오-메'보다 짧으면 짧았지 길다고는 볼 수가 없다. 그만큼 말의 장단이 발달한 것이다.

말은 늘어지면서 능청이 붙고 정이 붙는다. 어려서 친척집에 다녀올 때면 늘 듣는 말이 '조심해 가그라이잉'이다. 그냥 '조심해서 가라'라면 끝날 말이 '조심해 가그라이'로 표현되거나 그보다 더해서 '조심해 가그라이잉' 까지 가면 언어의 효율성을 따져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비효율적인 이 말 속에 전라도의 가락이 녹아 있고 정감 있는 전라도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아무리 나쁜 감정을 가지고 누군가를 만났더라도, 이 '-이잉'이나 '-께라우' 앞에서 녹지 않을 재간이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잉'이나 '-께라우'에서 녹지 않는 사람은, 전라도 말에서만 나타나는 '-음시롱' 이나 '-지롱'에 이르면 그야말로 찰떡에 고물처럼 상대의 마음자리에 찰싹 달라붙게 될 것이다. '-음시롱'은 '-으면서'에 해당하는 말인데, 흔히 동시에 일어난 일을 설명할 때 사용하거나, 상반되는 내용을 연결할 때 사용된다. '떡얼 묵음시롱 말얼 허는디'라거나 '가시내가 좋음시롱 안 그란대끼 허네이.' 식으로 쓰인다.

'-지롱'에 마땅한 표준말은 없다. '-지롱'은 흔히 놀림의 뜻으로 쓰이는데, 이때의 놀림이란 것은 악의가 없다. 오히려 재롱이나 장난의 뜻이 많은 놀림이다. 이 '-지롱'이라는 말은 몇가지 상황을 상정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숨바꼭질이라는 놀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숨바꼭질을 할 때 술래가 끝내 찾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안방에도 대숲에도 보이지 않아서 술래가 포기를 선언하였을 때, 물레 밑에서 아이들이 거미줄을 뒤집어쓰고 나오면서 하는 말, '물레 미테 있었지롱'이다.

또한 이런 경우에 쓰이기도 한다. 사탕을 찾고 있는 아이에게 손에 든 사탕을 들어 올리며 '여긋지롱' 하는 것이다.'-롱' '-롱'에 이르는 말이 그냥 말이 아니라 노래가 된다. 그리고 이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관계는 이미 '이무로운' 사이이다.

전라도 말 중 '이무롭다' 내지는 '이미롭다'는 말은 격이 없는 가까운 사이를 나타내는 말인데, 나는 그 말을 '이물(異物)'이 없다는 뜻으로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물이 없다는 것은 한 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무로운 사람은 남이 아니다. 한 세상 살면서 이무로운 사람 한 둘 있다면 그도 행복한 삶일 것이다.

이대흠 시인은 전라도 고향 내음을 더 가까이 전달하기 위해 홈페이지 리장다껌(www.rijang.com)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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