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속에 담긴 가을풍경 담아오기
멈춤 속에 담긴 가을풍경 담아오기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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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사람에게 오는 방법은 눈의 즐거움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손목에 늘 끼던 시계를 잃어버린 것처럼 무언가 빠져나간 듯 한 허전함을 느끼면서 시작된다. 아무도 그런 마음을 위로해주지 못할 때 그때 길을 떠나는 사람의 어깨는 움추려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 모습이 추해 보이거나 초라해 보이는 것은 결코 아니니 두려워 말고 길을 떠나 볼 것이다. 나를 바라보는 또 다른 나그네의 마음속에도 그런 쓸쓸함이 함께 있기 때문이며, 운 좋으면 맞닥뜨리는 모든 사물들이 그대를 위해 빛나고 있음을 처절히 느낄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길 위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 나는 무언가를 잃어 가는 그런 상실의 계절 가을에는 어느 곳을 가도 느낌이 남다를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특별한 코스를 추천하는 것은 피하고 있다.

늘 마음속에 간직했던 공간으로
가을 찾아가자


어느 순간 발을 내딛었던 곳에서 느껴지는 보드라운 흙의 품성은 단단한 겨울을 위한 스스로의 준비임을 마음으로 받아 주면 되는 것이고 그런 그 흙과 더불어 얘기를 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영사기에서 뿜어 나오는 빛처럼 한곳을 집중하는 풍성한 빛의 현란함에 잠시 한눈을 팔다보면 마음의 그런 쓸쓸함은 이내 바람결에 날려 버린다.

그래서 가을 여행은 모든 상처를 치유해주는 아름다운 매력이 있다.작년 가을 억새꽃 나풀거리는 탐진강변의 정자를 찾았다가 만나게된 길의 풍경은 올해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했을 터이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그 모습이 유효하게 남아있다. 눈길 거두어 삶의 본거지로 돌아온지 365일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강천산 계곡을 걸어 들어가다 만났던 붉은 단풍과 뒷 배경이 되었던 불변의 검은 바위가 주는 색감 또한 여전히 온전하게 남아있다. 그 계곡 길을 따라가며 만났던 물봉선, 며느리배꼽, 며느라밑씻개, 산초나무(잰피나무) 등도 여전히 눈에 반추된다. 그렇게 가을의 느낌은 강렬한 색감으로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사물에 대한 지극한 바라봄이 있었을 때 말이다.

그리고 호흡을 멈추고
적어도 20초이상 사물을 바라보라
그 속에 그대의 가을이 있으리니


이른 새벽에 여행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면 이 가을에는 목적한 여행지에 해가 뜨기 한 시간 전에 도착할 것을 권한다. 모든 사물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어떠한 자세로 어둠을 맞이하는지 그리고 그 어둠이 씻어 내린 뒤의 모습이 무엇인지 바라 볼 수 있어야 만이 그들과의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을, 특히 남도의 가을은 그 어느 곳 하나 버려 둘 수 없는 고귀하고 순결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아침 햇살을 받은 수크렁의 사위에 이슬이 얹혀 있는 모습, 응달진 곳에서 하얗게 사위를 빛내고 있는 구절초의 모습, 떨어진 낙엽이 조그만 연못을 빙빙 돌고 있는 모습, 그런 모습 속에 가을이 타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을을 만나기 전에 한가지 할 일이 있다면, 나는 로빙화와 일 포스티노라는 영화를 보고 길 떠나는 것을 권유하고 싶다. 사물의 본질은 바로 우리가 일순간 바라보는 눈길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잔잔한 얘기로 말해주고 있는 이 두 편의 영화 속에 여행의 묘법 또한 살아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또 하나 부탁할 것이 있다. 이 가을에는 사람 많은 공간을 찾지 말길 바란다. 늘 마음속에 간직했던 그대만의 공간으로 가을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것도 장황한 공간이동보다는 한자리에 멈춰서서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말이다. 그대들의 빛나는 여행을 위해 팁을 드린다.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호흡을 멈추고 적어도 20초 이상의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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