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도덕주의와 문화
극우 도덕주의와 문화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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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의 도덕과 그 사회의 문화가 무슨 관계에 있을까요? 도덕은 문화의 한 중요한 양식이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문화는 고급이든 저급이든 인간이 추구하는 어떤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도덕은 보이지는 않지만 최고의 가치를 담고있는 문화로 보입니다.

걸핏하면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서구인들이 자신들을 '문화적 인간'으로 내세울 수 있는 최후의 기준은 도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과학기술과 물질문명만으로는 자신들 문화의 '고귀성'을 입증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도덕은 도대체 무엇이고 누가 만들까요? 도덕은 길거리에서도 식탁에서도 강의실에서도 우리 삶의 행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질서 내지 에티켓입니다. 너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되었기 때문에 마치 자연발생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한 개인은 아닐지라도 어떤 계층이나 집단의 권위와 이익의 상징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서양인들이 식탁에서 포크나 냅킨을 사용한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지 않습니다. 손으로 먹던 습관에서 상류층 귀족들이 포크나 냅킨을 사용하게 된 이유가 '위생상'의 문제일까요?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실제로는 자신들을 천민과 구분하게 하는 부와 권력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점차 일반인에게 퍼져 심리적 압박감을 주는, '문명인'의 행동 양식으로 고착화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개고기를 먹는 행위가 문화의 문제일까요 도덕의 문제일까요? 도덕의 문제일 때 어떠한 도덕성의 잣대가 우리를 설득시킬 수 있을까요?

도덕과 도덕주의는 다릅니다. 도덕은 언제나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제가 (극우) 도덕주의라고 말하는 사상은 겉으론 도덕을 내세우면서 속으론 권력을 숭배하는 사상입니다. 이것이 상명하복의 폐쇄적 집단주의 사회였던 조선유교 사회가 해체되고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된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우리의 정신문화를 상당히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극우도덕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이중성, 위선성입니다. 한 쪽에선 매매춘, 원조교제 등에 대해 침을 튀기며 비난하고, 명단을 공개해 사회적 매장을 서슴치 않으면서, 다른 한 쪽에선 주택가 모텔이 여전히 불야성을 이루고 있습니다. 간통죄도 있고 공창도 없으면서 우리나라처럼 아무데서나 매매춘을 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흔치 않을 것입니다.

돈과 권력이 있는 자는 정말 자유로운 나라입니다. 돈과 권력이 없는 자도 형식상으로는 자유롭지만 도덕적으로 탄압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지배층과 똑같은 삶의 질을 갖는 것을 지배층은 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숨어서는 별짓 다하면서, 또 하고 싶어하면서 아랫사람들에게는 목에 힘주고 훈교하려는 양반님들이 아직 많은 것 같습니다. 클린튼이 '부적절한 관계'로 청문회에 섰을 때 많은 유럽사람들이 웃었다고 합니다. 그런 것도 기사거리냐고 신문사에 항의전화가 빗발쳤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제가 성문화를 특별히 예로 드는 것은 이것이 도덕주의자들이 침튀기며 주장하는 대표적 도덕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도덕률들이 있지만 성행위처럼 가장 사적이고 비밀스런 행위에 대해 도덕의 칼날을 들이대는 이유를 우리는 구조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개인의 부도덕의 문제로 전환시켜 은폐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에선 <그> 문제만 깨끗하면 다른 죄를 많이 저질렀어도 결국 회복되지만 그 문제만큼은 오랫동안 손가락질 받게 됩니다. 한국과 미국은 전통과 역사가 너무도 다른 국가인데 어째서 이 대목에서는 일치할까요? 그것은 도덕이 사회적 의미를 갖지 않고 개인적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종교 또는 거의 종교화한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개인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분야가 성도덕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포르노 산업을 자랑하고 있고 음지에서 맹활약하는 우리의 음란 문화도 만만치 않습니다.

극우도덕주의는 위선적 엄숙주의입니다. 엄숙성은 아랫사람에게 권력의 권위를 시위하고 그들을 통제하기 위한 매너로 고착된 것이며, 위선성은 무한히 퍼져가는 개인의 욕망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써야하는 권력의 가면입니다. 매춘녀를 무참히 폭행살인한 미군에게 고작 징역 6년, 성희롱한 모교수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것이 정당한 것이었을까요? 도덕은 아랫사람만 지키는 것이고 권력 앞에선 언제든지 슬그머니 도덕을 거둬들이는 것이 극우도덕주의의 도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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